결혼, 죽음

결혼이란 얼마나 야릇한 제도인가. 인류를 두 진영으로 나누어 한쪽엔 남자, 다른 한쪽엔 여자를 배치해서 각 진영을 무장시키고는 이제 그들을 합류시키며 “평화롭게 살아보라!”니.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의 ‘결혼’

아! 얼마나 꺼림칙한가. 왜 이제껏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말을 해줬으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결혼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강간, 그토록 강경하리만치 무지하게 보냈던 기나긴 젊은 시절이 이처럼 끔찍한 방식으로 종결되다니. 결코 위로받을 수도 나아질 수도 없는 불행으로만 여겨졌다. 그리고 열네 달 후. 이제 남편은 아내의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24~25쪽(귀족)

“결혼을 하려무나. 집에 여자가 들어오면 빛도 나고 활기도 생기는 법이란다. 부잣집 딸로다가. 아내도 가격이 있으니……. 그래, 데비녀 씨 댁 딸이 괜찮겠구나. 대수공업자 집안인데 지참금이 백만 프랑이라지, 아마. 네게 딱 맞는 비즈니스겠구나.”
29쪽(부르주아)

가정이란 일종의 잘 맞추어진 시계 같아서 부부 역할을 제각기 잘하면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는 점을 잘 알았다. 이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분명한 점은 돈을 토대로 잘 짜인 솔직한 동업자라는 것이다. 둘은 늘 동침했다. 따로 자면 침대보가 이중으로 더럽혀져 세탁하는 데 돈이 더 드니까.
50쪽(상인)

클레망스는 이제 서른 살이다. 그동안 아이 세 명을 기르느라 금발 머리는 누렇게 변했고 얼굴도 많이 상했다. 발랑탕은 술에 절어 생활했다. 입 냄새는 고약했고 대패질로 팔뚝은 굵었지만 몸은 전보다 야위었다. 봉급날이면 목수는 술에 잔뜩 취했고 호주머니는 비었다. 그렇게 귀가하는 날엔 부부싸움이 일어났고 아이들은 울어댔다. 차츰차츰 아내는 남편을 찾으러 술집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다 자신도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 탁자에 걸터앉아 술을 홀짝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은 아내의 뺨을 때렸고 아내는 잘못했다고 빌었다.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니.
60~61쪽(서민)


돈이 죽음을 오염시키고 나면 죽음에서 뿜어나오는 것은 분노뿐이다.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의 ‘죽음’

이윽고 조의를 표하는 연설이 시작되었다. 총 네 명. 전 장관 출신은 망자의 정치 인생을 요약하며 사람들의 음모만 없었더라면 프랑스를 구했을 겸손한 천재였다고 그를 평했다. 다음은 망자의 친구 한 명이 고인의 인간적인 미덕을 소개하는 바람에 다들 훌쩍였다. 그다음은 산업계의 대표 자격으로 낯선 사람이 연설을 이었다. 산업계에서 백작은 명예회장 자리를 역임했다. 마지막으로 창백한 혈색의 키 작은 남자 한 명이 도덕과 정치학 아카데미를 대표해서 애도를 표했다.
이러는 동안 주위 묘지에 관심을 보이며 대리석 묘비에 적힌 글을 읽는 이도 있었다. 거기에 귀 기울이면 몇 가지 단어가 들려왔다. 입술을 뾰족하게 내민 노인에게 들려온 문구는 이랬다.
“마음씨가 고왔으며 관대로움과 선량함이…….”
그말을 듣던 노인은 턱을 조금 움직이며 중얼댔다.
“그래, 나도 그런 존재를 하나 알았었지, 내 개.”
75~76쪽(귀족)

자식들이 유산에 대해 굳이 생각하지 않을 때도 게라르 부인의 태도가 오히려 돈에 대한 생각을 부추겼다.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도 돈을 지키려는 그녀의 태도에서 말이다. 분명하게 내비치는 의심과 함께 매번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식들을 바라보는 통에 되레 아들들이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그녀는 자식들이 자신이 숨을 거두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사실상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히려 어머니 눈길에 묻어나는 소리 없는 의심이 끊임없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83쪽(부르주아)

루소 씨는 가게 종업원을 보내서 초상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게 하고, 자신은 성당으로 향했다. 거기서 관계자들과 장례식 비용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가지 쓸 것을 두려워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내의 빈자리가 만든 슬픔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다. 혹여 아내가 지금 자신을 지켜본다면 신부와 장의사가 달라는 대로 주지 않고 흥정하는 자신의 모습에 뿌듯해 하리라.
99쪽(상인)

아이 엄마의 흐느낌 소리를 듣고는 보네 아주머니가 램프를 들고 나타났다. 두 여인이 아이를 바르게 눕히고 났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구호품이었다. 십 프랑과 빵과 고기 교환권. 빈민 구제소는 항상 기차가 떠나버려야 도착한다면서 모리소는 허탈하게 웃었다.
111쪽(서민)

아, 얼마나 평안한 휴식인가!
이제 장 루이에게 들릴 소리라고는 풀 사이를 폴짝거리는 새들의 가벼운 발짓뿐일 테니. 무덤을 밟고 지나가는 이도 없을 터다. 그렇게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는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수년간을 보내게 된다. 라꾸르떼이에서는 일 년에 두 명이 사망하는 일은 없으니까. 젊은이들은 앞서간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은 채 서서히 늙어가고 각자의 차례를 기다린다. 햇볕을 잔뜩 받는 평화로운 죽음, 시골의 고요함 속에 자리하는 영원한 숙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