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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펠렐리우 오키나와 전투 참전기 1944-1945
유진 B. 슬레지 지음 | 이경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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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4일 출간

종이책 : 2019년 10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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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47.67MB)
ISBN 9788932966793
쪽수 5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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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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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지옥의 2년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 펠렐리우섬과 오키나와섬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를 기록한 『태평양 전쟁With the Old Breed』(1981)이 번역 출간된다. 〈역대 최고의 전쟁물〉, 〈태평양 전쟁의 지상전을 다룬 최고의 걸작〉이라는 명성과 함께 30년 넘게 전 세계 독자들이 애독한 참전기다. 산호 바위, 진흙 참호, 습지대에서 펼쳐진 지상전부터 전함·함재기와 해병·육군이 총동원된 상륙 작전까지 태평양 전선에서 벌어진 군사 작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해병대원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상과 죽음의 문턱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오가는 군인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2010년 『태평양 전쟁』을 원작으로 HBO 미니 시리즈 「퍼시픽The Pacific」이 제작되어 큰 화제를 모았고, 출간 29년 만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익히 알려져 있듯, 태평양 전쟁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부터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까지 동남아시아·태평양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본군과 연합군 간의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로 갈수록 전투는 더욱 치열했고, 이 책은 미군 사단 규모의 병력이 궤멸할 만큼 치열했던 두 전투, 펠렐리우 전투(1944)와 오키나와 전투(1945)를 다루고 있다.

저자 유진 B. 슬레지는 태평양 전장에서 박격포병(제1해병사단 5연대 3대대 K중대)으로 참전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소수의 해병대원 중 한 명이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전투 현장에 투입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버릴까 봐 조바심을 내던〉 패기만만한 청년이었지만, 펠렐리우 상륙 작전 첫날 〈빗발치는 총탄〉과 〈포성의 쇳소리〉와 함께 전쟁에 대한 환상은 무참히 깨진다. 슬레지는 당시 전투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내용을 성경책 여백에 상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고, 36년 전 기록했던 메모를 토대로 『태평양 전쟁』을 집필했다. 해병대 입소부터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2년 8개월여의 기록이 담긴 참전기다. 〈죽음의 냄새는 내 코 안에 늘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전쟁은 그 자체로 미친 짓이다〉 등 회고록에 등장하는 독백과도 문장들은 건조한 역사 서술로는 도저히 담아 낼 수 없는 〈진짜 전쟁〉 이야기를 보여 준다. 저명한 전쟁사가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이 회고록에 대해 〈사실 관계와 관련해서 지적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내용의 진실성과 사실성을 보증한다.
추천의 말
해제
이 책을 쓰면서
감사의 말

제1부 펠렐리우 전투: 주목받지 못한 전장

1부 머리말 존 A. 크라운 중령
1장 해병대원의 탄생
2장 전투 준비
3장 가자, 펠렐리우섬으로
4장 지옥으로 진격하다
5장 또 한 번의 상륙 작전
6장 용감한 병사들 스러져 가다

제2부 오키나와 전투: 최후의 승리

2부 머리말 토머스 J. 스탠리 대위
7장 휴식과 충전
8장 진격의 서막
9장 4월 한 달 동안의 집행 유예
10장 바닥이 없는 구렁텅이 속으로
11장 불안과 공포
12장 진흙과 구더기
13장 돌파구
14장 슈리 고지를 넘어서
15장 고통은 끝나고

화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전우들 가운데서 그 지옥의 수렁에서 조금도 다치지 않고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많은 전우가 목숨을 바쳤고, 많은 전우가 건강하던 신체를 바쳤으며, 또 어떤 전우들은 건강하던 정신까지 바쳤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그 끔찍한 공포를 잊지 않고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28면

「자네가 태평양의 어느 해변에서 일본군의 포탄을 맞고 쓰러졌다고 쳐. 그런데 마침 인식표도 자네 머리와 함께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없어졌어. 자네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자네 무릎에 난 흉터…… 이것을 보고 전사한 그 병사가 자네인 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거야.」 -40면

펠렐리우 전투가 2차 세계 대전의 여러 전투들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덜 평가받는 전투라는 사실은 그 섬에서 싸웠고 또 죽어 갔던 장병들을 추모하기에는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다. -70면

일본군을 향한 해병대원의 증오심과 미군을 향한 일본군 병사의 증오심은 서로 상승 작용을 하면서 서로가 용서를 모르는 잔인하고도 광기 어린 전투를 하게 만들었다. 야수적이고 원시적인 증오에서 비롯된 이 살육은 야자나무와 섬들만큼이나 태평양 전쟁의 독특한 모습이었다. -92면

장교들은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조만간에 펠렐리우라는 이름의 어떤 섬을 공격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고향에 있는 누군가에게 발설하지는 않을까 무척 걱정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어떤 동료가 훗날 나에게 말하길, 고향으로 돌아간 우리 누구도 이 섬을 지도의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를 것이라고 했다. -108면

해변은 두꺼운 층의 검은 연기와 화염에 싸여 있어서 (…) 마치 대규모 해저 화산이 분화하는 모습 같았다. 섬을 향해 다가간다기보다 불타오르는 지옥 밑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우리 대원들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그곳은 망각의 현장이 되었다. -124면

일본군은 상륙하는 우리 병력을 총력을 기울여서 해변에서 저지하려고 했던 기존의 전술을 버렸다. 그들은 중앙 고지를 중심으로 섬 깊숙한 곳에서 동굴과 터널을 파고 견고한 방어 진지를 구축한 다음, 각각의 진지들이 서로 지원하는 복잡한 방어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21면

위생병은 등을 대고 누운 자세였고 배는 찢긴 채 활짝 열려 있었다. 잘게 부서진 가는 산호 가루들이 붙어 있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창자를 보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었을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133면

나에게 대포는 지옥의 발명품이었다. 파괴의 혼이 담긴 거대한 강철 덩어리가 예리한 쇳소리를 내면서 사정없이 날아와 표적을 파괴한다. 이것보다 더 흉포한 무기는 없다.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함의 화신이 바로 대포이다. 포탄은 사람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미쳐 버리기 직전까지, 아니 그런 범위를 넘어서면서까지 고문한다. -147면

구름이 덮어 버린 밤하늘은 칠흑처럼 검었다. 하늘이 어디까지이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맹그로브가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거대한 블랙홀이 나를 집어삼켜 버린 것 같았다. 손을 뻗어서 참호의 벽을 더듬어야만 현실의 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그 상황이 뜻하는 현실의 의미가 천천히 머릿속에 정리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소모품이다! -187면

나는 방금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 하나를 죽였다. 내가 쏜 총에 맞은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던 얼굴을 내가 똑똑히 보았다는 사실이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갑자기 전쟁은 매우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바뀌어 버렸다. 그 사람 얼굴 표정이 부끄러움의 구덩이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216면

옆에 있던 박격포 포수가 산호 자갈 여러 개를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그 자갈을 하나씩 집어서 죽은 기관총 사수의 반쯤 남아 있는 두개골 안으로 던져 넣는 놀이를 혼자서 하고 있었다.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 안에 고여 있던 빗물이 튀었다. 그 대원은 어린 시절 물웅덩이에 자갈을 던지면서 놀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장난을 했을 뿐, 자기가 하는 행동에 어떤 악의도 없었다. -225면

일본군 병사들한테는 우리를 섬에서 몰아낼 수 있다는 희망도, 추가 병력이 자기들을 지원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도 없었다. 그 시점부터 일본군은 순전히 우리를 죽이겠다는 그 목적 하나로만 우리를 죽였다. 그들에게는 희망도 없었고 보다 높은 차원의 다른 목적도 없었다. -252면

산호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바라보자니 정치인이나 기자가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 문득 떠올랐다. 〈조국을 위해서 흘린 피〉니 〈생명의 피를 바쳐 희생했다〉느니 〈영웅적〉이니 하는 표현이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전우가 흘린 피의 덕을 보는 것은 그저 파리들뿐이었다. -259~260면

기괴한 윤곽의 산호 능선과 돌무더기로 채워져 있는 계곡 등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전장이 아니었다. 특히 조명탄 아래에서 바라볼 때나 흐린 날에는 아무리 봐도 지구의 전투 현장이 아닌 것 같았다. 외계의 어느 행성에 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환상은 초현실적인 악몽이었다. -262면

친하게 지내던 동료 대원 하나가 자기에게 특이한 기념품이 있다면서 보여 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자기 배낭에서 비상식량을 쌌던 파라핀지로 둘둘 말아 놓은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러고는 종이를 벗겨 내고 내용물을 보여 주며 빙긋 웃었다. 그건 사람의 손이었다. -271면

제로센은 여유 있게 선회 비행을 하는가 싶더니 엔진 출력을 최대로 높이고 어느 한순간에 급강하했다. 가미카제 자살 특공기가 노린 대상은 수송함이었다. 그리고 적기는 순식간에 목표물에 명중했다. 수송함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332면

나는 전쟁은 인간을 괴롭히는 일종의 질병임을 깨달았다. 전쟁이라는 그 질병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창궐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 343~344면

죽음의 냄새는 내 코 안에 늘 가득 차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그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한순간 한순간을 보냈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 싸우고 또 피를 흘렸던 그 전장은 지옥에서도 가장 더러운 오수 구덩이였다. -422면

그 (여자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총알이 날아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으며,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고 죽는 일도 없고, 진흙탕에서 썩어 가는 시체도 없는 곳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428면

많은 전우가 전쟁 피로증에 시달렸다. 증상은 다양했는데, 주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심하는 사람에서부터 계속 울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큰 소리로 절규하는 사람도 있었다. -443면

미국이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커피가 충분히 뜨겁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기차나 버스를 기다리려면 줄지어 늘어서야 한다는 이유로, 또한 그 밖의 온갖 사소한 이유를 들어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을 억지로라도
이해해야 했기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447면

늘 똑같은 꿈이었다. 죽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던 포탄 구덩이나 진흙탕에서 슬금슬금 일어나서는 구부정한 허리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여기저기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입술을 달싹여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려고 귀를 세웠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고통과 절망으로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451면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의 결과물이다. 나는 대량학살의 열매이다. 나도 너처럼 살아남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지금 내 모습을 봐라. 죽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끝났다. 하지만 너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평생 그 모든 기억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고향에 있는 사람들은 네가 왜 그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간직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453면

〈만일 우리 조국이 살아 갈 가치가 있는 좋은 나라라면, 이런 조국을 위해서 싸우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행동이다.〉 특권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521면

“전설, 그 이상의 책.” - 톰 행크스

HBO 미니 시리즈 「퍼시픽」의 원작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펠렐리우 전투: 주목받지 못한 전장

슬레지가 첫 번째로 투입된 전장은 팔라우제도의 산호섬 펠렐리우였다. 남북으로 9킬로미터, 동서로 3킬로미터 크기로 〈지도의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를〉 만큼 작은 섬이었다. 맥아더 장군이 굳이 이 섬에 주목한 것은 필리핀으로 진격하는 연합군의 우익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훗날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불필요한 군사 작전이었다는 논쟁이 있었고, 이 전장에서 수많은 동료를 잃은 슬레지의 마음은 심란했다). 지휘관들은 사나흘이면 끝날 전투라고 호언했지만, 일본군이 섬 지하에 굴과 터널을 파서 방어 진지를 구축하면서(종심층 방어 전술) 전투는 장기전으로 흘러갔다. 일본군의 방어망은 해안선에서 섬 중심부의 지휘 본부까지 촘촘해 설계되어, 섬 전체를 하나의 전선으로 만들어 놓았다. 일본군은 〈(미군을) 섬에서 몰아낼 수 있다는 희망도, 추가 병력이 자기들을 지원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도 없었기〉 때문에 이 전략이 그들이 취할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미군은 산호 능선을 오가며 방어 진지를 하나하나 격파해야 했고, 1944년 9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10주간 벌어진 전투는 군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작은 산호섬이 〈절대적인 파괴와 황량함의 극치〉 속에 〈외계의 행성〉처럼 변해 갔다. 〈이빨이 뽑힌 채로 마치 웃고 있는 듯한 표정의 사체들은 기괴한 자세와 상태로 여기저기 도처에 널려 있었고〉, 작전 지역에 방치된 적의 사체는 〈일종의 랜드마크 기능〉을 했다. 시체와 오물도 넘쳐났고, 그로 인해 청파리가 들끓었다(막 개발된 살충제 DDT가 처음 사용된 전장이 펠렐리우였다). 심지어 고장 난 장비가 쌓이면서 섬 곳곳이 쓰레기장이 되었다. 〈기괴한 윤곽의 산호 능선과 돌무더기로 채워져 있는 계곡 등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전장이 아니었다. 특히 조명탄 아래에서 바라볼 때나 흐린 날에는 아무리 봐도 지구의 전투 현장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일본군이 전멸한 뒤에 전투는 끝났지만(일본군 1만 1,000여 명이 죽고, 미군 8,769명이 죽거나 다쳤다), 〈전쟁의 가혹한 진실을 맛본〉 슬레지의 가슴을 채운 것은 기쁨보다는 냉담함이었다. 〈내 안에 있던 어떤 것이 펠렐리우섬에서 죽고 없어졌다. 어쩌면 그렇게 죽고 없어진 것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유치한 순진함일지도 모른다.〉

오키나와 전투: 최후의 결전

슬레지의 두 번째 전장은 태평양 전쟁 최후의 전장인 오키나와였다. 일본 영토였던 오키나와에는 10만 명이 넘는 일본군 정예 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1945년 4월 1일, 미군은 전함과 함재기, 전차가 총동원된 상륙 작전을 전개했고, 슬레지와 해병대원들은 수륙양용선에 올랐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해변에 일본군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슬레지와 고참병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 무렵 일본군의 주력은 이미 오키나와 남부에 겹겹의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초반 전투에서 미군은 기세 좋게 오키나와 북부와 중부를 손에 넣었지만, 남부의 전황은 악화일로였다. 제7보병사단과 제96보병사단, 예비대인 제27보병사단까지 모두 슈리 전선에서 막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결국 1945년 5월 1일, 제1해병사단이 제27보병사단과 교대해 슈리 전선으로 투입됐다. 슈리 공격은 일본군의 단단한 방어술도 문제였지만, 5월 이후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군인들의 전투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참호 안으로 빗물이 끊임없이 들이쳤고, 진흙 때문에 차량 이동이 쉽지 않아 보급도 어려웠다. 〈시체 주변 1~2미터에는 구더기들이 기어 다니다가 비가 오면 빗물에 쓸려 가곤 했다.〉
또한 전쟁이 길어지면서 많은 군인들이 전쟁 피로증combat fatigue에 시달렸다. 증상은 다양했다. 무방비로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는 병사도 있었고, 〈계속 울기만 하는〉 병사, 〈큰 소리로 절규하는〉 병사도 있었다(오키나와에서 미군 사상자는 실종자를 포함한 사망자가 7,631명이었고 부상자는 3만 1,807명이었다. 이 가운데서 전쟁 피로증으로 인한 정신질환자는 2만 6,221명이었다.) 슬레지 역시 악몽에 시달렸다. 〈나는 죽은 해병대원들이 벌떡 일어나 소리도 없이 그 구역 주변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늘 똑같은 꿈이었다. 죽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던 포탄 구덩이나 진흙탕에서 슬금슬금 일어나서는 구부정한 허리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여기저기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슬렁거렸다.〉
6월 11일부터 18일까지 쿠니요시-요자-야에세 고지에서 펼쳐졌던 연이은 공방전은 슈리 전선 못지않게 아군에 대규모 인명 피해를 안겼다. 이 전투를 끝으로 오키나와섬에서 일본군이 벌이던 조직적인 저항은 완전히 끝났다. 일본군 사상자 수는 확인된 시신만 10만 7,539구였다. 오키나와 작전에 투입된 K중대원 총 485명 중 살아남은 인원은 슬레지를 포함한 50명이었다.
8월 8일, 최초의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었고, 일주일 뒤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전쟁은 끝났다. 슬레지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한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죽은 전우들을 떠올렸다. 정말 많은 전우들이 죽고 또 정말 많은 전우들이 불구가 되었다. (…)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은 많은 대원들은 멍한 눈을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전쟁이 없는 세상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지 가늠하려고 애를 썼다.〉

고통은 끝나지 않고…

슬레지는 이 책에서 전쟁을 〈야만적이고 수치스럽고 끔찍한 낭비〉라고 쓰고 있다. 그는 〈조국을 위해서 흘린 피〉, 〈생명의 피를 바쳐 희생했다〉, 〈영웅적〉 등의 정치인과 신문기사의 수사가 얼마나 공허한지 잘 알고 있고, 〈전우가 흘린 피의 덕을 보는 것은 그저 파리들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슬레지가 회고록에서 내비치는 참전병에 대한 생각은 좀 복잡하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이들이, 이제는 평생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야수적이고 원시적인 증오에서 비롯된 살육이 야자나무와 섬들만큼이나 독특한 모습으로 벌어졌던〉 태평양 전선에서, 해병대원들은 〈자기들이 일본군 병사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죽여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다〉. 슬레지가 당시 전장에서 미 해병대가 보인 야만성과 광기에 대해 변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일본군을 향한 해병대의 증오는 일상적이었고 지극히 자연스러웠다고 고백한다. 일본군에 의해 아군이 당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들의 분노는 타올랐고, 그렇게 전쟁은 그들을 야수로 만들었다. 슬레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런 행위들은 그들의 정신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그들은 그 끔찍한 흔적을 안고서 평생을 살아야 했다〉. 슬레지가 오키나와 하프문 고지에서 〈얼굴이 반쯤 날아가고 없는〉 해병대원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비웃음과 저주는 살아남은 군인들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의 결과물이다. 나는 대량학살의 열매이다. (…) 지금 내 모습을 봐라. 죽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끝났다. 하지만 너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평생 그 모든 기억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전쟁 뒤 고향으로 돌아간 군인들은 대체로 환대를 받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을 이해한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거꾸로 자신들이 〈미국이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커피가 충분히 뜨겁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기차나 버스를 기다리려면 줄지어 늘어서야 한다는 이유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이해해야 했다.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참전병 개인의 몫으로 돌아갔다.
슬레지와 동료들은 〈만일 우리 조국이 살아 갈 가치가 있는 좋은 나라라면, 이런 조국을 위해서 싸우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행동〉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하곤 했다. 특권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책임을 받아들이고 조국을 위해 스스로 희생을 감수했던〉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들 덕분에 평범한 일상과 자유를 누린 시민들이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들이 어떤 전투를 치렀고, 어떻게 광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는지, 어떤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들의 희생과 고통, 비이성과 몰지각 모두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매겨 주어야 한다. 슬레지가 36년간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그날의 기억을 책으로 묶은 이유이다.

북 트레일러

작가정보

태평양 전쟁 참전 병사이자 회고록 작가. 생물학자. 1923년 앨라배마주 모빌에서 태어났다. 1942년 미 해병대에 입대해,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은 뒤 태평양 전장에 박격포병으로 참전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맹렬했던 두 전투, 펠렐리우 전투(1944)와 오키나와 전투(1945)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해병대원 중 한 명이다. 제대 뒤에는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아 몬테발로 대학교에서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했다. 2001년에 사망했다. 1981년에 출간된 『태평양 전쟁With the Old Breed』은 슬레지가 전투 현장에서 수첩 크기의 성경책에 몰래 기록했던 메모를 토대로 쓴 작품이다. 한 해병대원이 전쟁에서 보고 겪은 충격과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저명한 전쟁사가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태평양 전쟁』을 〈20세기 전쟁 서사를 다룬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았다.

서울대 경영학과,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플랫폼 기업전략』, 『부의 감각』, 『프레즌스』,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신호와 소음』, 『승자의 뇌』, 『안데르센 자서전』, 『카사노바 자서전』, 『투자전쟁』 등 90여 권이 있다. 저서로는 에세이집 『1960년생 이경식』, 『청춘아 세상을 욕해라』, 『대한민국 깡통경제학』,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나는 아버지다』, 소설 『상인의 전쟁』, 평전 『이건희 스토리』 등이 있고,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나에게 오라」, TV 드라마 「선감도」, 연극 「동팔이의 꿈」, 「춤추는 시간여행」, 오페라 「가락국기」, 음악극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 등의 대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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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태평양 전쟁
    펠렐리우 오키나와 전투 참전기 1944-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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