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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분야 : 역사/풍속/신화 > 서양사
  • 저자 : 시오노 나나미  지음 | 이경덕옮김
  • 출판사 :살림
  • 2017년 04월 25일 출간 (종이책 기준)
그리스인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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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손에 잡힐듯 생생히 묘사해낸 그리스인이 꿈꾸고 실현해나간 세상!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원류,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써내려간 필생의 역작 『그리스인 이야기』 제1권. 저자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리스인의 생각, 인생, 정치, 문화, 사회, 외교의 전모를 펼쳐낸다. 제1권에서는 태초 신화와 고대올림픽에서 시작해 활발한 해외 식민도시 건설과 민주주의 실험, 그리고 도시국가들 간 경쟁·갈등·협력과 국운을 건 두 차례의 페르시아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역사와 그 속에서 부침하는 여러 리더들과 시민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스가 어떻게 서양 문명, 나아가 현대 문명의 한 모태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신선하다. 지정학적 결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해양 대국을 건설하고,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정치 실험과 개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간 그리스인들.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고매한 이데올로기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 필요성 때문에 태어났고, 민주정치의 확립과 더불어 국난 극복이라는 또 하나의 큰 과제를 맞닥뜨린 그리스가 이것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2,500여 년 전 그들의 고뇌와 노력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 우리의 지향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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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제1장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올림픽
신들의 세계
해외로 웅비

제2장 나라 만들기의 여러 모습
리쿠르고스의 ‘헌법’: 스파르타
솔론의 개혁: 아테네
페이시스트라토스 시대: 아테네
쿠데타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아테네
도편추방
기권은? 그리고 소수의견 존중은?

제3장 침략자 페르시아에 맞서
페르시아제국
제1차 페르시아전쟁
마라톤
제1차와 제2차 전쟁 사이의 10년
정적 제거
전쟁 전야
테르모필레
강제 소개
살라미스로
살라미스해전
플라타이아이전투
에게 해, 다시 그리스인의 바다로

제4장 페르시아전쟁 이후
안전보장
아테네와 피레우스의 일체화
스파르타의 젊은 장군
델로스동맹
영웅들의 그날 밤

연표
도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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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시오노 나나미
저자 : 시오노 나나미
저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3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1968년까지 공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다. 1968년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추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천착해왔으며,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 해석과 뛰어난 필력으로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이 책 『그리스인 이야기』(전3권)에서는 로마보다 더 이전에 서양 문명의 토대를 일군 위대했던 그리스를 본격 탐구함으로써, 역사 서술의 지평을 한층 심화?확장한다. 그리스인은 왜 민주정치를 만들었으며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또 국가 위기 시 지도자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고 시민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냈는지에 대해 특유의 흡인력 있는 문장과 풍성한 역사 지식으로 서술해나간다. 대표작으로 『로마인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바다의 도시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 저작집』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많은 작품을 펴냈다.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산토리 학예상, 기쿠치 간 상, 신초 학예상, 시바 료타로 상 등을 수상했고,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받았으며, 일본에서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역자 : 이경덕
역자 이경덕은 문화인류학 박사. 저술가 및 번역가. 한양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아시아 문화, 종교 문화, 신화와 축제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신화 읽어주는 남자』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그리스와 놀자』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황금과 교역의 나라 페르시아』 『인문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고민하는 힘』 『주술의 사상』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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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인 이야기. 1_00650
    • 평점 5점 만점에 3점
    • j2h****
    • 2018.09.14

    1.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1.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기원전 776년에 올림피아 땅에서 시작된 고대올림픽은 기원후 393년 폐지 명령을 받을 때까지 무려 1,169년 동안 계속 되었다. 4년에 한 번 열렸으니 모두 292회나 개최한 셈이다.

    393년에 고대올림픽 폐지를 명령한 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였다. 세례 받은 그리스드교 신자가 된 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그리스도교 외에는 국교가 없음을 선포하고 다른 모든 종교를 사교라고 규정했다.



    2. 나라 만들기의 여러 모습


    도시국가 스파르타를 구성하는 세 계층인 스파르타 시민 : 페리오이코이 : 헬롯'의 비율은 1 : 7 : 16 정도였다고 한다.

    아테네 시내의 인구가 10만에 이르렀을 때 아테네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스파르타의 시내 인구는 3만 정도에 머물렀다. 도시 내부에 스파르타 시민과 그 가족 이외의 사람이 사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스파르타는 강력한 군사 국가로 유명한데 그것은 외적보다는 내부의 적을 방어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파르타인 리쿠르고스는 자기가 이룬 개혁을 '종교'로 만들었지만 아테네인 솔론이 이룬 개혁은 어디까지나 법률에 기초를 둔 '정치'였다.


    22세에 솔론의 눈에 띄어 30세에 '살라미스의 영웅'이 되었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이제 54세가 되었다. 근현대사 연구자들은 페이시스트라토스를 '티라노스(독재자)'라고 부른다. 그래서 앞으로 풀어갈 그의 치세를 '독재자가 아테네를 지배한 시대'라고 부른다.


    '테트라드라크마tetradracma(4드라크마 은화)'는 그 후 200년 이상 아테네를 대표하는 통화가 되었다.


    솔론의 개혁은 아테네에 질서를 부여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지향한 것은 아테네를 안정시키고 이를 통해 경제력을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당시 제조업에서 중요한 분야를 차지한 아테네의 항아리 산업이 크게 비약했다. 코린토스 제품을 모방하지 않았다. 싸구려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가격경쟁에서 승리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코린토스 제품에 도전하려는 듯이 아테네에서 생산된 항아리의 주종은 붉은 바탕에 검은 색이나 검은 바탕에 붉은 색으로 묘사한 항아리였다.

    차이가 나는 것은 색깔만이 아니었다. 정지한 사람을 묘사한 코린토스 제품과 달리 아테네 제품의 무늬에는 역동적인 인간 묘사가 많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장면에서부터 올림피아의 올림까지 묘사했다. 나체로 무리 지어 달리는 남성 주자들, 네 마리 말이 질주하는 전차경주 등을 그려 넣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양피지에 필사하는 방법으로 '정본화'한 사람도 페이시스트라토스였다.


    "분명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전제 통치자였다. 그러나 쾌적한 전제자였다."


    클레이스테네스는 35년 전에 불탄 채로 방치되어 있던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자비로 재건했다. 이 신전은 리쿠르고스의 사례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스파르타인들이 신탁을 얻기 위해 찾는 곳이었다. 훌륭하게 재건된 신전을 보고 스파르타인들은 감격했고 클레이스테네스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었다.


    기원전 510년, 아테네를 지배했던 전제정치는 막을 내렸다. '페이시스트라토스 체제'는 개막 36년 후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은 지 17년 만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다른 나라의 손을 빌렸다고는 하지만 이겨서 살아남은 것은 클레이스테네스였다.


    페리클레스도 클레이스테네스가 속한 아테네의 명문 중 명문 알크마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늘날까지 명성이 자자한 '아테네 민주정치'는 모두 최고의 엘리트들이 만들었다. 왜냐하면 고대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는 '국정 방향을 시민(데모스demos)의 손에 맡긴다'가 아니라 '국정 방향은 엘리트들이 생각해서 제안하고 시민에게 그 찬반을 맡긴다'이기 때문이다.


    융성기의 아테네 지도자들이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명문가 출신으로 채워진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솔론, 페이시트라토스, 클레이스테네스, 페리클레스 등 아테네의 개혁이라는 릴레이 팀 주자들 이름을 거론하면 그 폐해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세습의 연속이었다.


    페이시스트라토스 시대 말기에 스파르타가 현실화한 '펠로폰네소스동맹'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동맹은 페이시스트라토스 통치 시대에 급속도로 번영을 구가한 아테네에 위기감을 느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도시국가들과 함께 결성한 동맹으로 이 동맹을 전후로 해서 스파르타는 패권 노선을 180도로 전환했다.


    제비뽑기라고 하면 아테네 사람들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서는 고대 아테네의 생각에 접근할 수 없다. 그들에게 추첨은 결과를 신에게 맡긴다는 의미였다. 클레이스테네스가 추첨을 도입한 깊은 뜻은 아테네 시민이 일생에 한 번은 공직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도편추방

    당시의 종이는 파피루스를 재료로 만든 것으로, 이집트에서 수입해야 해서 가격이 비쌌다. 한편 항아리나 접시 제조가 성황을 이루었던 아테네에 테라코타(도기) 파편은 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았다. 따라서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투표는 지참한 작은 칼로 그 도기 파편에 문자를 새기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도편(오스트라콘ostracon)은 투표용지로 사용되었고 추방해야 할 사람을 뽑을 때도 활용되었다. 도편추방은 투표와 다른 엄중한 규제가 있었다.

    첫째, 이 투표의 목적은 도시국가 아테네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국외 추방에 처하는 것이다.

    둘째, 이 목적에 따른 투표는 1년에 1회로 한다.

    셋째, 투표에 참가한 사람이 6,000명 이상이 되어야 하고 6,000명이 넘지 않으념 정족수 미달로 성립되지 않는다.

    넷째, 전체 투표자의 과반수가 이름을 적은 사람은 10년 동안 국외추방에 처한다.


    도편추방제에 따라 추방된다는 것 자체는 명예훼손이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당당하게 귀국할 수 있었고 스트라테고스로 재선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뿐 아니라 시민집회에서 결의하면 10년이 안 되어도 귀국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25년 동안 빈번하게 일어났다.


    오늘날 그리스·로마 문명을 모태로 한 서구에서조차 아테네 민주정치를 만들어낸 주인공이 솔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는 참된 의미에서 민주정치의 창시자는 클레이스테네스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민주정치 자체라면 이미 에게 해에 있는 키오스 섬이나 아테네에 인접한 메가라에서도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와 두 도시국가의 차이는 민주정치를 확립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있다.

    그 격차는 왜 생겼을까. 아테네만이 중산계급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솔론이 첫걸음을 떼고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경제력을 더했으며 그 뒤를 계승한 클레이스테네스가 개혁을 단행해서, 아테네는 스스로 생산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건전한 중산계급'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잘게 분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편성한 것이 사회 격차를 줄였다. 중산계급의 존립 없이는 민주정치가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적 상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정세에서도 실제로 증명되었다.


    작가에 대한 평가는 '작품'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사생활은 관계없다.



    3. 침략자 페르시아에 맞서


    페르시아와 그리스 두 나라는 모두 기원전 6세기에 거의 동시에 발흥해 평시와 전시 구별 없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페르시아제국이 다리우스 3세 시절인 기원전 333년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군대에 완패하면서 몰락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마라톤전투'가 기원전 490년 여름에 벌어졌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가 지닌 역사적 의의는 매우 컸다. 페르시아가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증명되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이 사실이 그리스 세계뿐 아니라 중동이나 이집트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진 '마라톤'은 근대올림픽 종목인 '마라톤'으로 이름을 남겼다. (제1차 페르시아 전쟁)


    기원전 486년, 아직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지도 않았는데 심신이 지친 탓인지 '왕 중의 왕' 다리우스가 죽고 말았다. 이렇듯 무패와 부적으로 전진하던 다리우스의 36년에 이르는 치세가 막을 내리게 만든 것은 마라톤에서 당한 패배였다. 다리우스는 자기 뒤를 이어 '왕 중의 왕'이 될 아들 크세르크세스에게 그리스에 대한 설욕전을 유언으로 남겼다.


    넷째 아들로 태어난 레오니다스는 왕위 계승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져 보통의 스파르타 소년과 마찬가지로 7세부터 20세까지 계속되는, 병사 양성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생활을 하며 성장했다.

    레오니다스는 비인간적이라고까지 생각되는 엄격하고 거친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20세가 되었을 때 야산에 버려져 개인의 재능과 힘만으로 일주일을 살아남았고, 마지막에 헬롯이라 불리는 농노를 습격해 머리를 베어 갖고 돌아오는 야만적인 통과의례까지 치렀다. 그런 과정을 모두 경험한 스파르타 왕은 레오니다스가 유일하다.


    기원전 480년 8월에 일어난 역사적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레전투'는 스파르타의 마지막 병사가 전사하면서 끝났다. 스파르타 전사에게 철학이라고 해도 좋을 '이기든지 죽든지'를 그대로 보여준 전투였다. 레오니다스와 그가 이끈 스파르타인 300명은 순수한 스파르타 전사로서 싸우다가 죽었다.


    아테네인과 달리 스파르타인은 역사뿐 아니라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 옥쇄 :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지다. 공명이나 충절을 위해 깨끗하게 죽음


    파우사니아스는 전왕인 클레옴브로토스의 아들이었고 또 한 사람의 전왕인 레오니다스의 조카였다.


    페르시아 총사령관 마르도니우스의 전사(플라타이아이 전투)


    플라타이아이전투는 살라미스 해전과 달리 당시 최강국인 페르시아로서는 변명할 거리가 없는 명백한 참패였다. 살라미스해전에서 패한 것은 주력이던 페니키아 해군이지 육군 대국인 페르시아가 아니라는 변명이 가능했다. 그러나 플라타이아이에서 페르시아는 주력을 투입하고도 패배했다. 그야말로 '완패'를 맛보아야 했다.

    후세 역사가들은 이 플라타이아이전투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승리의 영예는 거의 100퍼센트 스파르타의 파우사니아스와 그의 중무장 보명에게 돌려야 한다."


    첫해인 기원전 480년은 살라미스해전에서 그리스 쪽이 페르시아를 상대로 '결정타'를 날린 해였다. 두 번째 해인 기원전 479년은 플라타이아이전투 승리와 미칼레와 세스토스의 탈환 성공으로 그리스 쪽이 페르시아에 '결정타'를 날린 해였다. 이렇게 해서 에게 해는 다시 그리스인의 바다로 돌아왔다.


    그사이 페르시아 왕 크레스크세스는 안전한 내륙에, 페르시아가 그리스 침공의 전초기지로 생각했던 사르디스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플라타이아이와 미칼레의 패배 소식을 들었다. 크세르크세스는 격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가신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래도 아직 괜찮았다.

    40세가 된 페르시아 왕을 고뇌의 밑바닥으로 빠뜨린 것은 분노가 아니라 더 질 나쁜 감정이었던 듯하다. 오리엔트 귀공자를 습격한 이 인격 파탄은 플라타이아이나 미칼레 전투 결과 때문이 아니라 이미 살라미스해전 직후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까지 그를 조절해왔던 자기 제어가 붕괴되었다. 아들의 애처에게 손을 댔고, 이 사실을 알고 미칠 듯이 화가 난 왕비가 그 여인의 사지를 절단하는 만행이 발생하면서 급기야 왕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었고, 더욱 무분별한 생동을 일삼을 뿐이었다.


    페르시아(동방)는 '양'으로 압도하는 방법으로 공격해 왔다. 그리스(서방)는 '질'로 맞서 싸웠다. 이때 '질'이란 개개인의 소질보다는 모든 시민이 지닌 자질을 활용한 종합적인 질을 의미한다. 즉 한데 모아서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승리했다. 보리 한 줌에 불과했지만 대제국을 상대로 이긴 것이다.

    페르시아전쟁을 통해서 자기들이 지닌 모든 힘의 적절한 활용을 중시하는 정신이 그리스인의 마음에 생겨났다.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 문명이 이후 유럽의 모태가 되는 노정을 거쳐 유럽 정신을 형성하는 중요한 한 요소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승부는 '양'이 아니라 '활용'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4. 페르시아전쟁 이후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에서 승리한 뒤 스파르타의 초대를 받았는데, 다른 나라 사람에게 폐쇄적인 일국 평화주의 노선을 완고하게 지켜온 스파르타인에게서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면 국보급 대환영을 받았다. 스파르타인은 늘 시의심을 가고 아테네인을 바라보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에게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올림픽의 우승자라도 된 것처럼 이 아테네인의 머리에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스파르타의 베테랑 세대는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해 아테네인이지만 장군을오서 재능을 충분히 인정했고, 스파르타 청소년들은 동경 어린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다음 에피소드는 그 후 얼마 뒤에 개최된 고대올림픽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경기가 진행 중인 주경기장 관중석에 테미스토클레스가 들어왔다. 그때까지 선수들에게 집중했던 관객 전원의 시선이,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선수들에게서 떠나 관중석에 막 들어선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집중되었다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최고의 유명인일 뿐 아니라 그리스 최고의 유명인이었다.


    기원전 490년에 마라톤 평원을 무대로 전투를 벌인 것이라 마라톤전투다. 여기에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300명이 옥쇄한 테르모필레전투 그리고 살라미스해전을 포함한 세 전투를 2,500년 뒤 서양인들도 그리스의 페르시아 군대의 침공에 맞서 싸운 3대 전투로 알고 있다.


    마라톤전투는 2만 5,000명의 페르시아 군대에 맞서 1만 명의 그리스 군대가 압승을 거둔 전투였다. 이 승리의 최고 공로자는 사실상 최고사령관으로 아군 전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밀티아데스였다.


    밀티아데스의 명성은 급상승했다. 아테네 시민은 그에게 전투를 맡기면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60세가 되어 쏟아지는 칭찬을 받자 밀티아데스의 마음이 움직였을지 모른다. 다음 해에 시민들의 요청을 받아서 이번에는 해군을 거느리고 파로스 섬 공략에 나섰다. 그런데 파로스 섬 공략전에서는 준비 부족에다 밀티아데스 본인이 중상을 입어 1개월갸량의 공방전 끝에 아테네 군대는 퇴각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아테네 시민들은 밀티아데스에게 격노했고 중상을 입은 최고사령관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고소를 당한 '마라톤의 영웅'은 최악의 경우 사형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때 밀티아데스를 사형에서 구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마라톤에서 사령관 중 하나로 밀티아데스를 도운 테미스토클레스였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애를 썼지만 사형을 벌금형으로 낮추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밀티아데스는 불과 1년 전에 칭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이제는 50탈란톤이라는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고 아들 키몬이 조금씩 갚는다는 조건으로 겨우 사형을 면했다. 하지만 얼마 뒤 부상이 악화되어 끝내 세상을 떠났다.

    당시 35세던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사건에서 배운 바가 있었을 것이다. 민중이란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실망 또한 커지는 생물이라는 점을 말이다. 또한 과도한 기대를 품은 자신들은 반성하지 않고 자신들이 맛본 실망의 정도를 더욱 크게 느끼면서 실망을 초래한 사람을 미워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마라톤에서 승부의 열쇠를 손에 쥔 사람은 밀티아데스였고, 살라미스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플라타이아이에서는 스파르타의 젊은 장군 파우사니아스가 그 열쇠를 손에 쥐었다.


    페르시아는 육군의 나라이며 페르시아가 다시 침공해 오면 육지를 통해 육로로 올 것임을 아테네 시민 모두가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페르시아는 이미 살라미스에서 대패했고 사모스 섬의 해군기지도 붕괴되어 바다에서 공격해 올 일은 없었다. 당시 아테네는 최대 최강의 해군국이었다.

    그러나 육군을 주요 전력으로 삼는 나라가 그리스 내부에도 있었다. 바로 스파르타였다.


    스파르타를 맹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동맹'과 양립하는 형태로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동맹'이 탄생했다.


    기원전 471년 도편추방에 의해 테미스토클레스가 국외로 추방되었다. 살라미스해전 9년 뒤의 일이었다. 플라타이아이전투 뒤 8년, 아테네와 피레우스 일체화 이후 7년, '델로스동맹' 결성 뒤 6년이 지난 때였다.


    그동안 계속해서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뿐 아니라 중세에서 근대까지, 근대에서 현대까지 유럽인들은 파우사니아스가 뛰어난 장군이었지만 증오해야 마땅한 배신자라고 믿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 독일 학자들이 위작설을 주장했는데, 이것이 위작임을 아는 데 어떤 특별한 학식조차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헤로도토스도 어느 정도 의심을 품으면서 기술했다고 하는 데 헤로토도스보다 더 실증적인 역사서를 쓴다고 자부했던 투기디데스가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한마디로 투기디데스는 파우사니아스를 좋아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파우사니아스에 관해서는 저잣거리의 소문 정도 중상이라고 보아야 할 일화까지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여서 소개했다. 투기디데스의 <역사>에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의 전투가 아니라 그 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가 기록되어 있다. 아테네 사람 투기디데스가 보기에 파우사니아스는 한 시대 이전의 주역이었지만 당시 적국이 된 스파르타 사람이었던 것이다. 파우사니아스에 의한 플라타이아이 승리도 그 중요성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아테네인 투기디데스가 보기에는 적국 스파르타의 인간이 이룩한 위업일 뿐이었다.


    투기디데스 덕분에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의 에포로스들뿐 아니라 그 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배신자'로 단죄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이제까지 등장한 사람들의 흉상은 소개할 수 있지만 파우사니아스의 흉상만은 소개할 수 없다.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의 흉상이 현대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고대 로마인이 수없이 많은 모사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을 존경했던 로마인은 공공도서관, 자택 서재 등에 그리스 위인들의 흉상을 두는 것을 좋아했다.

    고대 그리스의 흉상이 현대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고대 로마인이 수없이 많은 모사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을 존경했던 로마인은 공공도서관, 자택 서재 등에 그리스 위인들의 흉상을 두는 것을 좋아했다.

    파우사니아스의 흉상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전투에 능숙했던 로마인조차 파우사니아스를 '배신자'라고 보았다는 증거다. 덕분에 페르시아제국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두들겼던 '플라타이아이전투'에 대한 후세의 평가까지 '살리미스해전'과 비교되지 못했다. 그 결과 스파르타가 주역으로 치른 전투로는 레오니다스와 병사 300명의 테르모필레 옥쇄만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말았다. 옥쇄해서 패배하기보다는 옥쇄하지 않고 승리하는 쪽이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페르시아왕은 바로 허락했다. 그것도 그냥 오케이가 아니라 테미스토클레스를 마그네시아라는 도시와 두 지방의 장관으로 임명했을 정도다. 이 세 곡에서 들어오는 수입을 생활비로 쓰라는 말이었다.

  • 그리스인 이야기 1
    • 평점 5점 만점에 5점
    • mnh***
    • 2017.09.09
    25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300"이란 숫자에 "테르모필레(필라이) 전투"라는 역사적 사건의 상징이 고스란히 담긴 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 저자 시오노 여사는 새삼 책 중에서 감탄하고 있…
    25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300"이란 숫자에 "테르모필레(필라이) 전투"라는 역사적 사건의 상징이 고스란히 담긴 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 저자 시오노 여사는 새삼 책 중에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사실 놀라운 건 그것뿐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유, 독립심, 개인주의" 같은 가치들 그 원형이, 역시 그만큼이나 오래 전에 지중해 일대의 문명권 일부에서 형성되었고, 전제주의나 독재 따위의 안티테제로 이만큼이나 오래 버텨 오다 마침내 현대 국제 정치 체제의 기본 합의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된 그 내력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입니다(최근 일부 전체주의적 정치 단위들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요). 어쩌면 저자가 한 세대 전의 히트작 <로마인...>, 이탈리아 중근세사 시리즈에 이어 다시 "그리스인 이야기"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게 된 것도, 그런 보편적 이념과 가치의 근원에 대한 끝없는 애모, 호기심, 경탄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 역사는 부분적으로 우리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꽤 친숙하지만, 로마사처럼 체계를 잡고 요약해 보라면 훨씬 까다롭고 난삽합니다. 탁월한 이야기꾼인 시오노 여사에게도 아마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전부터 방대한 사료 섭렵, 혹은 현지 답사 등을 통해 작가로서 자신만의 확고한 시야와 중심틀을 갖고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저자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전작들에 비해 별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는, 역시 흥미롭고 개성 강한 이야기를 (그간 오래 기다려 왔을) 독자들 앞에 드디어 풀어내고 있습니다.

    시오노 여사를 비롯,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아마도 농경 중심 가부장 문화에서, 한번 설정된 공동체의 지향을 위해 가장 높은 강도로 개인의 주장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을 문화권의 성원들일 겁니다. 반면 독재나 전횡을 거부하고, 형이상학적 사유이든 성 생활의 취향이든 경제 활동의 영위 양상이든 철저히 각성된 개인주의와 자유를 추구한 가장 아득한 원형은 바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문명이었을 겁니다. "어째서 동과 서는 이만큼이나 서로 다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 동아시아인들이 가장 먼저 파고들었어야 할 과제는 바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누구였는가에 대한 천착이었을 텝니다. 현대를 사는, 적당히 속물적이면서도 적절히 우리만의 해석과 감성을 대상에 부여(왜곡에 이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하고 싶어하는 평균적인 우리들의 수요를 가장 잘 간파하고 공감하며 대변하는 작가인 그녀가, 이 시리즈를 위해 정말 많이 연구하고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배어나는 책이었습니다.

    책은 일단 고졸기(古拙期. archaic period)와 고전기로 그리스인들의 고대를 나누며, 다만 고졸기에 대해서는 과감한 생략으로 건너뜁니다. 어차피 고대사나 고고학 전문가가 아닌 저자의 한계도 있겠으며, 웬만한 학식과 경력을 갖고서도 해당 시기에 대한 시원시원한 서술을 문외한인 대중에게 풀어 주기란 너무도 어려운 과제입니다(사료 부족. 유적 미비 등의 이유로). 책은 그리스 문명의 고전 개화기에서 시작점을 잡는데, 우리가 익히 봐 왔던 여사 특유의 스타일로, 박력 있고 활기차며(호불호가 갈려 왔지만 누구도 이런 개성적인 힘찬 행보의 매력은 부인 못 하죠) 고유의 관점, 평가(혹은 "감정")를 사항, 대목마다 선명히 불어넣거나 새겨 가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만약 고졸기를 (무리해서라도) 커버하는 시작, 구성, 계획이었다면, 아무리 노련한 저자였어도 아마 이런 경쾌한 발걸음을 떼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또 우리 독자들 역시 여사의 수고가 민망하게, 그 토픽에 대해 큰 관심을 주지도 않았을 거고요. 이런 지점에서도 여사는 역시 영리하다는 점 확인하게 됩니다. 그녀를 우리가 역사학자로 존경스레 대해 온 게 아니라 "스타일리스트"로서 선망해 온 건 우리들 독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여사는 스파르타의 역사를 그리스 고전 문화의 개창자(아테네보다 몇 발 앞선)로 분명히 규정합니다. 역시 그녀다운 단순화, 도식화, 개인화(?)를 통해, 우리가 표준적 관점이라며 교과서에서 배워 왔던 프레임보다 훨씬 선명한 채도의 설명을 자랑하며, 동시에 몇 배나 더 흥미로워지는 준거틀을 마련합니다. 책의 본문 전체를 통해 (언제나 그래 왔듯) 일관성도 뚜렷합니다. 디테일과 깊이의 빈약함을 주장의 선명도와 화려한 채색으로 은폐하려 든다는 일각의 비난은 과한 감도 없지 않습니다. 감상과 평가는 저자만의 특권이고, 팩트만 추려 볼 때 딱히 오류라 지적할 만한 부분도 눈에 띄지 않는데다, 무엇보다 그녀의 "썰"은 재미있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리쿠르고스의 독주와, 솔론-페이시스트라토스-클레이스테네스-테미스토클레스-페리클레스(이 마지막 분은 2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려나 봅니다) 5인의 계주라며, 스파르타/아테네의 헌정 체제와 역사를 요약한 건 물론 표준적인 관점입니다. 전자를 일종의 종교 체계로, 후자를 합의와 이성과 법체계의 지배로 규정한 건 그녀만의 단칼식 이분법입니다.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풍토가 지배한 체제였기에 한번 정한 걸 좀처럼 손대지 않고 신성화하기까지 한 문화를 두고 대번에 "종교"로 후려치듯 요약한 건 또한 그녀의 익숙한 필법이자 우리 독자들이 사랑해 온 "귀여운 폭주"입니다. 사실 그녀는 소녀처럼 열광하는 듯 하면서도 은근 서양 고전 문화에(나아가 현대의 그것에까지) 심리적 거리를 두는 편인데, 아테네인이든 스파르타인이든 왜 그렇게 신전이나 제의에 집착하고, 비실용적인 초자연적 사고를 즐기는 지가 끝내 이해 안 된 듯한 느낌도 드러내곤 합니다. 그녀의 프레임대로라면 개인주의-합리주의 전통과 이런 푸닥거리는 서로 심각한 모순이 아닐 수 없었겠죠.

    그녀가 모순으로 꼽는 또하나의 지점은, 평소에는 그토록 분열, 대립, 불화, 각개약진 양상으로 서로를 밀어대던 여러 도시 문명권(물론 그리스)이, 외적의 침략이란 공통의 재앙에 마주해서는, 때로는 책략, 속임수, 협박으로, 때로는 진지한 이해와 공감과 연대의식으로 놀랄 만한 단결을 이뤄 내고야 마느냐 하는 대목입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자체 해답을 어느 정도는 내어 놓고 있는데, 철저하고 진지한, 유감이 남지 않는 개인주의에의 경도가, 결국 협업이 필요할 때 놀랄 만한 자기희생, 팀웍, 애국심, 이타주의로 귀착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자율과 독립심, 주체적 사고방식이란 범주와, 이성적으로 감정과 욕구를 절제하며 유효한 팀웍을 이뤄나가는 정신이란, 동전의 양면에 가깝습니다. 평소에 억눌리고 존중 못 받아 온 영혼은, 단체에의 헌신조차 온전하게 못 이뤄내기 마련입니다. 단합과 노예 근성은 알고 보면극과 극의 지점에 위치합니다.

    2부의 후반부를 꼼꼼히 읽어야, 풍토가 다양하고 지형이 복잡하며 정복-이주-복속-식민의 역사가 복잡한 그리스 고대사의 개념틀을 잘 잡을 수 있습니다. 여사의 책이 항상 그렇듯, 꼭 꼼꼼히 선행 파트를 읽어야 매 섹션이 재미있어진다거나 맥을 잃고 헤매지 않게 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아무데나 펴서 읽기 시작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히도록 독자를 배려하는 게 그녀의 장기죠). 이 그리스 역사는 저자께서도 공부와 연구를 해 가며 집필한 게 여러 대목에서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나는 평소에 메모를 자주 하며 사항을 정리하지만, 그것을 책에 그대로 써 놓지는 않는다"면서, 그러나 이번이 첫 예외라는 듯 그간 저술한 여러 책에서 반대, 대립의 도식 구조 속에 배치한 세력, 신분, 집단과, 이 책 중의 (스파르타의) 왕 - 감독관 대립 구도를, 서로 닮았다는 듯 병치하여 둔 "메모 초안"을 공개합니다(이미지 파일 같은 건 아니고 본문 중 텍스트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의도도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며 간신히 이해할 정도로 반감까지 느껴졌습니다만, 역시 여사의 책은 또 그런 맛에 읽는 겁니다.

    여사는 좋아하는 편, 치떨리게 싫어하는 편을 극명히 나눠 가며 독자에게 말을 거는 분이죠. 이 책에서의 그런 예를 찾자면 역시 수미일관되게, 스파르타의 에포로이(감독관들로 번역합니다)를 동양식 개념의 "소인배"로 규정하여, 전쟁영웅 파우사니아스 왕의 비참한 말로에 대해 폭풍 공감을 표현합니다. 파우사니아스는 비교적 후대에 등장한 특정한 개인이지만, 제도로서의 에포로이(에포로스들. 물론 교대 선출직)은 스파르타의 건국기 이래 지속적으로 여사님께 욕을 들어먹는 한심한 작자들입니다.

    다만, 대 페르시아 항전기 내내 아테네의 정치적 숙적으로 지낸 아리스티데스- 테미스토클레스 양인의 스탠스는 다소 미묘한 느낌도 없지 않던데요. 대체로 저자께서는 "(선거에, 혹은 정계 지도자로)나와야 할 사람"을 전자로, "나오고 싶어하는 사람"을 후자로 보시던데, 책 읽으신 분들은 눈치 챘겠지만 역사 위인(캐릭터?!)으로서는 전자가 훨씬 이 저자님의 편애를 받는 편이었습니다(여사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일단 대 명문가 출신이라야 합니다. 졸부, 평민으로 자수성가, 이런 애들은 안 키우죠). 허나 우리가 교과서에서 익히 배워 알듯, 정치인으로서 경세가로서 후자의 족적이 워낙 뚜렷하기에, 전자(여사님이 편애하는)와 대립하는 국면에서도 후자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정한 태도를 결코 잃지 않습니다.

    또 미소년, 동성애, 귀공자, 훤칠한 신장, 고귀한 출신 등의 모에화 요소가 여사님 책에서는 빠질 수가 없겠는데요. 벼락 출세자이자 보기에 따라 찬탈자 위상이기도 한 다리우스의 아들, 그 출생과 정통성에 한 점 흠결이 없는, 잘생기고 키 큰 39세의 청년(중년 아닌가요?) 크세륵세스에 대한 저자님 묘사의 결이 어떨지 구경하는 재미가 빠질 수 없습니다. 여러 번 반복되는 "귀공자" 운운에서 알 수 있듯, 여사님의 필치는 다분히 감성적입니다. 그러면서도 부황에게서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허공에 날리고 "인격 파탄(저자의 표현입니다. 여러 번 반복되기까지 합니다)"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못난 생을 마쳤다며 최종의 평가는 가차없고 냉랭합니다(이 또한 우리가 잘 아는 저자의 개성이죠).

    그리스 역사는 그 본질부터가 여러 도시 공동체의 연맹 이상이 아니었기에, 로마처럼 한 줄기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운 과제를 놓고 저자께서는 특유의 맥락화, 설화화, 채색화(?)를 통해, 좀처럼 평균적 대중의 시야에 "한 큐로" 들어오기 어려운 구도를, 종래 본인의 스타일까지 고수해 가면서, 성공적으로 책 한 권에 엮어 놓고 있습니다. 여러 지도는 저자 고유의 관점을 반영하고, 독자와의 소통, 본문과의 유기적 연결을 위해 특별히 편집된 게 많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무엇을 생략하고 무엇을 일일이 반영할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본문 중에서 털어놓는 대목이 있습니다. 복잡한 줄기를 한 눈에 파악하는 데에, 이 분야 역사에 익숙한 독자들도 아마 실용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스의 위인과 제도사에 대해 깔끔하고 신뢰성 있는 분석을 균형있게 배치했을 뿐 아니라(위인들의 일화, 여담에 치중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특히 데모스- 트리부스- 트리티움의 행정 구조 개혁에 대한 설명이 일품이었습니다), 대(對) 페르시아 전쟁의 큰 줄기와 전술적 기발함에 대해,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 준 대목이라든가, 현대인이 보편적 상식으로 이미 수용한 여러 지향과 가치에 대해, 사항 설명과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수렴해 가게 하는 솜씨가 놀라웠습니다(중산층의 건전한 성장과 민주주의 활성화 사이의 상관 관계 등). 2권도 어여 읽어 보고 싶네요.
  • 그리스인 이야기. 1
    • 평점 5점 만점에 5점
    • y00******
    • 2017.08.09
    시오노 나나미 책을 참 좋아합니다. 로마인 이야기 부터 십자군 이야기까지 다 읽었고요, 이번에 그리스인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서 또 바로 구입하게 됐습니다. 책 내용을 보자면 영화 300에서 다뤘던 내용이 나와서 일단 반갑고 낯설지 않아 좋을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의 각종 제도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어서…
    시오노 나나미 책을 참 좋아합니다. 로마인 이야기 부터 십자군 이야기까지 다 읽었고요, 이번에 그리스인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서 또 바로 구입하게 됐습니다. 책 내용을 보자면 영화 300에서 다뤘던 내용이 나와서 일단 반갑고 낯설지 않아 좋을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의 각종 제도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어서 그리스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늘그렇듯 제국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그리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살라미스해전에 대한 소개는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필력이 더해져서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전쟁의 의미와 배경에 대한 설명은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쟁이라는게 허무한 장난(?)같다는 생각이 들게도 합니다. 1권을 재밌게 읽어서 빨리 2권이 나와주길 바래봅니다.
  • 시오노 나나미가 보는 그리스는?
    • 평점 5점 만점에 5점
    • mus******
    • 2017.07.30

    드디어 시오노 나나미가 돌아왔습니다.

    한길사에서 나온 로마인 이야기가 15부작으로 공전의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휩쓴 지가 꽤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십자군이야기가 3부작으로 나왔고, 로마이후의 역사도 다룬 책들…

    드디어 시오노 나나미가 돌아왔습니다.

    한길사에서 나온 로마인 이야기가 15부작으로 공전의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휩쓴 지가 꽤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십자군이야기가 3부작으로 나왔고, 로마이후의 역사도 다룬 책들이 많았습니다.

    로마가 아직 제국이 되기 전에 로마에는 그리스 식민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로마 못지 않게 그리스도 많이 궁금하던 차에 이런 책이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로마인 이야기가 공전의 히트를 친 후에는 몸젠의 로마사나 기번의 로마사도 주목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책이 손에 붙고 술̈ 넘어가는 로마사는 역시 나나미가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는 너무 대중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들었으나, 역사적인 지식이 전무한 가운데에는, 나나미 할머니의 옛 이야기가 제격인 듯합니다.

    어서 읽어봐야겠네요^^

  • 그리스인 이야기 1
    • 평점 5점 만점에 5점
    • did***
    • 2017.05.31

    흥미롭지만 방대한 양으로 인해 어렵게 다가오기도하는 그리스 이야기. 보통 그리스,로마와 함께 묶여진 이야기를 만나거나 로마에 관한 책을 만나기 마련인데 그리스인 이야기라…

     

    흥미롭지만 방대한 양으로 인해 어렵게 다가오기도하는 그리스 이야기. 보통 그리스,로마와 함께 묶여진 이야기를 만나거나 로마에 관한 책을 만나기 마련인데 그리스인 이야기라는 주제로 그리스인들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야기라 우리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그리스인 이야기 1>

    이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만나봤던 독자라면 그리스인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많은 부분 할애되지 못했던 그리스인 이야기를 따로 내기로 마음 먹었는데 먼저 스타트한 것은 그리스였고 로마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그리스가 침체기였을 때 이탈리아 반도를 제패하며 로마가 앞지르기 시작했고 그런 로마사는 사람들 기억속에 자리잡아 로마사보다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리스인 이야기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한다. 어떻든 간에 독자로서는 로마인 이야기와는 별개로 그리스인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 1> 시리즈도 무척이나 반갑게 다가온다.

     

    오래 전에 스파르타군에 대한 영화로 다가왔었던 '300'을 연상시키는 스파르타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영화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세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보여졌듯이 태어난 아이의 몸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절벽으로 떨어뜨려 죽여버렸던 잔인하리만치의 강인한 모습의 스파르타인들은 늘 전쟁을 염두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왕은 항상 2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흥미롭게도 왕이 직접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고한다. '헌법'을 만들었던 리쿠르고스는 헌법이라는 의미보다는 신앙에 가까워 그리스가 '고졸기'를 마치고 '고전기'로 이행하기 시작한 6세기에 리쿠르고스 체제에 금이 가게 된다. 그것은 아테네가 솔론, 페이시스트라토스, 클레이스테네스,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라는 5명이 바통 터치를 하며 개혁을 이루었던 것과 달리 리쿠르고스의 헌법으로 이끌어갔던 스파르타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어 개혁의 변화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이후 '300 제국의 부활'로 영화에서 보여졌던 살라미스해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인물로 테미스토클레스가 등장하는데 누군가는 기회주의자라고 그에 대한 평가를 내기리도하지만 무엇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역시 역사란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인물들이었지만 이 책을 통해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전투 장면의 묘사나 생활사 같은 이야기는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은 생생함을 느낄 정도로 자세한 전달이 되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에 반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임은 분명한 것 같다. 기존에 만나보았던 해설과는 다른 구체적이고도 다른 표현이 그리스인을 알아가는 재미를 주고 있는데 이어질 그리스인 이야기의 다음편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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