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

맥스가 숨을 고른다. “계획을 세워야 해.” 그는 레어티스호를 돌아본다. 우주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그 우주선으로부터 그들은 매순간 멀어지고 있다.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캐리스는 맥스의 뒤로 돌아가 그의 은색 우주복 뒤를 뒤지고 있다. “누가 우릴 돕겠어? 우리가 사람을 본 게 언젠데…….”
“그렇지.”
“우리가 가진 건 조명이랑 로프, 물……. 추진제는 왜 안 챙겼지? 우리 너무 멍청하다.” 그녀가 말한다.
“그야 그때는…….”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내가 다시 가서 질소를 가져오게 두었으면…….”
“비상 상황이었어.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네 머리가 쪼그라들고 네가 질식해서 죽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했니”
캐리스는 다시 앞으로 돌아와 그와 헬멧을 맞대고 원망하는 눈으로 그를 본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 자기도 알잖아. 머리가 쪼그라드는 건 이상한 영화들이 만들어낸, 21세기의 근거 없는 미신이라고 EVSA(European Voivode Space Agency, 유로피아 보이보드 우주국)가 그랬어.”
“EVSA가 얘기한 게 한두 가지여야지. EVSA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잘못될 일이 전혀 없다고도 했어.” 맥스는 자신의 우주복 소매에 붙어 있는, 파란색의 EVSA 휘장을 툭툭 치며 말을 잇는다. “기억해?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위험성 평가 포기 각서에 서명하게 했잖아.” _ 9쪽

“오스릭 말로는 추진제가 없으면 우주선으로 돌아갈 수 없대.”
맥스는 얼굴을 찌푸린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거야”
- 캐리스? 그보다 더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 잠깐만.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어? 오스릭은 항법장치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는데. 혹시 이건 어떨까?”
- 캐리스.
- 왜, 오스릭.
- 상황 분석 결과 두 사람의 산소통이 가득 차지 않았습니다.
- 우린 레어티스 밖으로 나온 지 꽤 됐거든.
- 남은 공기와 사용한 산소를 모두 합쳐도 총량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얘기해, 오스릭. 제발.
- 처음부터 산소통에 공기가 가득 차 있지 않았습니다.
- 뭐?
- 추가로, 상황 분석 결과 공기가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감지됩니다.
“뭐라고?” 기막힌 소식에 그녀는 오스릭이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잊었다. 그녀는 얼른 같은 말을 타이핑한다.
- 뭐라고?
- 두 사람의 산소통이 모두 손상되었습니다, 캐리스.
- 공기가 얼마나 남아 있어?
“캐리” 맥스가 말한다.
- 계산 중입니다.
- 빨리, 오스릭.
- 남은 공기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단 90분입니다, 캐리스. _ 12~13쪽

그는 자정 무렵 그 만찬 자리에서 나왔다. 그녀는 그가 문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문틀에 기대섰다. 쌀쌀한 날씨 탓에 카디건을 걸치고 두 팔을 옹송그린 채였다.
“오늘 저녁 고마웠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을 식사에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그가 말했다.
“내 감자구이를 그럴듯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들은 함께 웃었다. “내일은 뭐해요?”
“가게에서 일하죠. 그쪽은?”
“나도 일해요.”
그는 선뜻 걸음을 떼지 않았다. “그리스어 배우러 또 가요?”
“아, 그래야죠.”
“어학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는지 알았으니까.” 그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만간 봐요, 캐리스.”
그는 두어 번 뒤를 돌아보았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문가에서 멀어지는 그녀의 실루엣을 비췄다. _ 38~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