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어린왕자

몹시도 긴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오는 거냐?"
노인이 물었다.
"두꺼운 책은 뭐에요? 여기서 뭘 하시는 거죠?"
"난 지리학자란다."
"지리학자가 뭐에요?"
"바다와 강과 도시와 산, 그리고 사막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지."
"참 재미있네요. 그야말로 직업다운 직업이군요!"
어린왕자는 지리학자의 별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처럼 멋진 별은 여태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 별은 참 아름답군요. 넓은 바다도 있나요?"
"모르지."
지리학자가 대꾸했다.
어린왕자는 실망했다. "그래요? 그럼 산은요?"
"몰라."
"그럼 도시와 강과 사막은요?"
"그야 알 수 없지."
"지리학자라면서요!"
"그렇지. 하지만 난 탐험가가 아니거든. 내겐 탐험가가 정말 부족하단다. 도시와 강과 산, 바다와 태양과 사막을 셈하러 다니는 건 지리학자의 몫이 아니지. 지리학자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니 한가히 돌아다닐 수가 없거든. 서재를 떠날 수가 없단 말씀이야. 서재에서 탐험가를 만나든 거지.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서 기억을 기록하는 거야. 탐험가의 기억 중에 흥미로운 게 있으면 지리학자는 그의 정신을 깊이 들여다 본달까."
"왜요?"
"탐험가가 거짓말을 하면 지리책에 커다란 이변이 일어날 테니까. 탐험가가 술을 너무 마셔도 그렇지."
"그건 왜죠?"
"술에 잔뜩 취한 사람에겐 모든 게 둘로 보이거든. 그러면 지리학자는 산이 하나밖에 없는 데 둘을 기입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제가 아는 사람도 그런 나쁜 탐험가가 될 수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탐험가의 정신상태가 훌륭하다고 생각 될 때는 그가 발견한 것을 조사하지."
"가보시나요?"
"아니. 그건 너무 번거로우니까. 대신 탐험가에게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거야. 예컨대, 커다란 산을 발견했을 때는 커다란 돌멩이를 가져오라고 한다거나, 뭐 그렇게."
지리학자는 돌연 흥분했다.
"그런데 너는 멀리서 왔지! 그렇다면 너도 탐험가라구! 별이 어떤 별인지 이야기 해 주렴!"
지리학자는 노트를 펴고 연필을 깎았다. 탐험가의 이야기를 처음에는 연필로 적었다가, 그가 증거를 가져오길 기다릴 때는 잉크로 적었다.
"자,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