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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미] 그리스인 이야기 - 구성상품 총 3권

  • 분야 : 역사/풍속/신화 > 서양사
  • 저자 :
  • 출판사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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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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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원류,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써내려간 필생의 역작.



제1권에서는 태초 신화와 고대올림픽에서 시작해 활발한 해외 식민도시 건설과 민주주의 실험, 그리고 도시국가들 간 경쟁·갈등·협력과 국운을 건 두 차례의 페르시아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역사와 그 속에서 부침하는 여러 리더들과 시민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2권에서는 정치, 사회,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많은 부분에서 절정기를 이룬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조망한다. 그리고 아테네의 국운을 결정지은 펠로폰네소스전쟁과 아테네의 쇠퇴를 통해 그리스 세계가 급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제3권에서는 펠로폰네소스전쟁 이후 도시국가 시대의 그리스가 몰락해가는 순간순간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한편 그리스 변방에서 새롭게 웅비한 마케도니아의 대왕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와 이집트를 제압하고 거대한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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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그리스인 이야기. 1

그리스인 이야기. 2

그리스인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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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역사 저술가 중 한 사람인 시오노 나나미. 그가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원류,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모두 3권으로 출간하는 시리즈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저자는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리스인의 생각, 인생, 정치, 문화, 사회, 외교의 전모를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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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3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1968년까지 공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다. 1968년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추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천착해왔으며,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 해석과 뛰어난 필력으로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이 책 『그리스인 이야기』(전3권)에서는 로마보다 더 이전에 서양 문명의 토대를 일군 위대했던 그리스를 본격 탐구함으로써, 역사 서술의 지평을 한층 심화?확장한다. 그리스인은 왜 민주정치를 만들었으며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또 국가 위기 시 지도자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고 시민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냈는지에 대해 특유의 흡인력 있는 문장과 풍성한 역사 지식으로 서술해나간다. 대표작으로 『로마인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바다의 도시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 저작집』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많은 작품을 펴냈다.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산토리 학예상, 기쿠치 간 상, 신초 학예상, 시바 료타로 상 등을 수상했고,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받았으며, 일본에서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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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인 이야기1
    • 평점 5점 만점에 5점
    • hs5***
    • 2018.11.13

     

    서양 문명의 원형, 민주주의 창시자 그리스인을 둘러싼 거대 역사 스펙터클

    참 사람사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전쟁없이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역사를 참 좋아했는데 학창시절 세계사 공부를 할 때 힘든 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 전쟁이 시험에 나온다치면 그저 누가 누구랑 왜 싸웠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도만 달달 외우면 될 것을... 나는 전쟁이 일어나게 된 계기나 과정, 이후 두 나라의 관계가 어찌되었고 주변 국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온갖 잡다한 것들이 모두 궁금했다.
    한 사건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시험에 나오는 것만 달달 외운 후, 다시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는 그런 공부가 이해도 되지 않고 하기 싫었다. (결론적으로 공부하기 싫었다는 핑계를 이런 식으로 ㅋㅋㅋ)

    그간 유럽의 역사를 파해치며 알게 모르게 주워들었던 상식에 살을 덧붙이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은 지도를 찾아 읽는 재미가 있다. 읽기 전에 한눈에 펼쳐지는 지도를 한 번 훑어보고 읽으면서 종종 다시 지도로 되돌아와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지금과 같은 지명도 있고 달라진 지명은 따로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1장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책의 분량과 비교했을 때 다소 약소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신화 이야기가 많이 나와 단숨에 읽어버렸다. 몰랐던 도시국가도 알아가면서 슬슬 그리스인 알아가기 시동을 걸었다.

    2장 나라만들기의 여러 모습
    학창시절 간단하게(?) 배웠던 그리스의 민주정치가 실로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인물과 사건 속에 탄생,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창시절에는 클레이스테네스가 어느 도시국가 소속인지 리쿠르고스 헌법이 정확하게 누구를 위한 건지 알고 싶었는데 이 책을 통해 말끔히 해소했다.
    무엇보다 솔론, 페이시스트라토스, 클레이스테네스,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등 아테네 민주정치를 이끌어 갔던 분들의 자취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좋았다. 태생부터 성장기, 이후 살아온 과정을 알게 되면서 구분이 명확해졌다. 고대 민주정치가 지지하는 인물이나 의견에 따라 당이 갈리고, 시민의 지지를 얻어야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등 오늘날 민주주의와 비슷한 점을 여럿 발견하여 놀라웠다.

    3장 침략자 페르시아에 맞서
    대망의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알차게 배웠다. 잘 몰랐던 페르시아 역대 왕의 성향과 전략을 통해 페르시아가 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그리스와의 전쟁 양상이 흥미로웠다. 페르시아를 상대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때로는 협력하며 때로는 맞서며 대응하는 모습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각 도시국가마다 특성이 있고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마치 전략게임을 하듯 보는 재미가 있다.
    사실 역사적 사실만 읽었을 때는 수긍하는 것 이외에 달리 얻는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의 상세한 설명이 뒷받침 되기 때문에 얻는 것이 많다. 정신없는 전쟁 속에서도 왜 이런 전략을 구사했는지, 어떤 식으로 물리쳤는지 친절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나처럼 지식이 짧아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4장 페르시아전쟁 이후
    가끔 델로스동맹과 펠레폰네소스동맹을 헷갈릴 때가 있었다. 이 장에서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페르시아와 전쟁은 끝났지만 아테네, 스파르타, 페르시아 간의 정치적 밀당이 흥미롭다. 책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책의 마무리가 특히 마음에 와닿는다. 멋진 마무리와 함께 그리스인이야기2편은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 된다.

     

     인간이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한편으로 어처구니없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생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성가신 생물인 인간에게 이성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철학'이다. 반대로 인간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일괄해서 그 모든 것을 써가는 것이 '역사'다.
    이 두 가지를 그리스인이 창조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그리스인 이야기3
    • 평점 5점 만점에 5점
    • hs5***
    • 2018.09.30

    그리스인이야기3.jpg

    책 편식이 심한 내가 가장 최애하는 이야기. 그리스로…


    그리스인이야기3.jpg

    책 편식이 심한 내가 가장 최애하는 이야기. 그리스로마신화!!!
    어릴 때부터 그리스로마 신화에 빠져 살다보니 그리스와 로마가 우리나라 다음으로 좋아졌고 관심이 생겼다. 신화뿐만 아니라 실제 역사을 알고 싶어 기회가 될 때마다 관련 주제로 된 책을 보곤 했다.
    안타깝게도 외래어에 무척 약하여 그들의 이름과 지명을 외우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계속!! 오래도록 보고 싶다!!!


    글쓴이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와 <십자군 이야기>로 친숙한 작가.
    만약 내가 학창시절 좀 더 깨인 학생이었다면 이 분과 같은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그리스로마 신화에 빠져 파고들어 전공으로 삼고 유학을 떠나 더 깊게 공부하고...
    내가 동경하는 삶을 살고 계신 분이다.


    오!!! 이 이야기는 신선하다!!!
    그동안 읽었던 그리스 이야기는 시작과 잘 나가던 시대의 이야기가 중점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리스의 패망시대를 다루는 것 같아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리스이야기 마지막 책이라고 패망시대를 다룰 것이라는 건 나의 선입견이었고 또다른 시대의 시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책에서는 '새롭게 웅비하는 힘'이라고 표현한다. 세계사를 배울 때 딱딱 끊어서 배웠던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역사를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었다.

    제1부 도시국가 그리스의 종언
    나의 선입견은 딱 1부까지였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리고 테베. 이 세 도시에서 활약하거나 비운을 맞이한 인물을 알 수 있었고 각 도시국가가 처한 사회, 정치, 경제, 전쟁 등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냥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이 한 문장에서 느껴지는 전율을 누가 알까.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짧은 글재주가 한없이 저주스러운 순간이다.

    1부를 읽고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유일하게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알쓸신잡3' 가 최근 방영을 시작하였는데 세상에... 내가 박사님들의 대화에 낄 수 있다니... 예전에 '알쓸신잡'을 시청할 때 그저 감탄하며 보기 바빴는데 이제는 박사님이 던진 질문에 대답도 척척하며 듣는 이야기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스 이야기>를 읽은 덕분이다. 앎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다.

    제2부 새롭게 웅비하는 힘
    2부에서 본격적으로 마케도니아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가 미약했던 마케도니아를 어떻게 발전시키기 시작했는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끝이 좋지 않았지만 그 또한 아들로 하여금 대국을 건설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고 하니 사람 일이 참으로 얄궂다.
    드디어 아들, 알렉산드로스 이야기가 시작된다. 역시 대왕이라는 호칭이 붙을만 하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무려 반 이상이 알렉산드로스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32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쉼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를 평하는 것에 말을 아낀다. 대신 그의 일생을 연표로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여 독자에게 맡긴다. 내가 가진 짧은 소견으론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완전히 몸을 태운 초처럼 살았다는 것에 백배 공감한다.
    마지막으로 '헬레니즘 세계'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일어난 일에 대해 펼쳐진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분할되었지만 죽은 후에도 끼친 대왕의 영향력이란 실로 놀랍다.


    책 읽기 초입에서 도시국가의 패망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어 유익했다면 점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업적에 대해 알게 되어 무척 보람찼다. 이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했는데 그동안 얇게 따로따로 놀던 지식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느낌이다. 지도가 자주 등장하여 지명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림이나 사진 자료가 있어 참고하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책이 묵직하다고 절대 겁먹을 필요가 없다. 외래어에 약한 나는 노트에 써가며 읽어야했기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추석 연휴 기간동안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이 여세를 몰아 예전에 읽다말았던 <로마인이야기>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 그리스인 이야기. 3
    • 평점 5점 만점에 5점
    • bea***
    • 2018.09.27
    저자 시오노 나나미 선생은 이 책을 끝으로 더이상 역사관련 서적을 집필하지 않겠다 선언했다던디 참 아쉽네요. 로마인 이야기부터 십자군이야기 그리고 이책까지 참 재밌게 보면서 역사공부를 해서 다른 신작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흔히 시오노 나나미 선생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익이네, 주관적인 글귀가 너무 많네…
    저자 시오노 나나미 선생은 이 책을 끝으로 더이상 역사관련 서적을 집필하지 않겠다 선언했다던디 참 아쉽네요. 로마인 이야기부터 십자군이야기 그리고 이책까지 참 재밌게 보면서 역사공부를 해서 다른 신작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흔히 시오노 나나미 선생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익이네, 주관적인 글귀가 너무 많네하는데 역사라는게 기록된 짧은 문구를 가지고 학자에 따라서 살을 보태서 과장하는 소설류가 아닐까 생각하는 입장에서, 그런 비판 비난이 참 소모적이고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한권만 보고 역사적 사실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객관화 과정을 거치는 거지. 그런 점에서 너무 가혹한 잣대가 아닌가 싶거든요. 어쨋든 저자 덕분에 그리스 역사에 대하 공부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 [서평] 누가 동서양을 잇는 제국을 만들었는가,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 3》
    • 평점 5점 만점에 4점
    • wen******
    • 2018.09.26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 이름이 낯설지 않다. 대한민국 정규 교과 과정에서 세계사 혹은 사회 시간에 들어봤을 이름이다. 어린 나이에 동방원정을 떠나 동방과 서방을 아우르는 제국을 세운 위대한 사람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로 마케도니아에 대해 아주 얕게 배웠던 기억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혹은 그 유명한 고르디우스의 매듭 일화 정도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했던 매듭을 단칼에 잘라 해결한 지혜로운 왕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과연 어떤 이유와 방법으로 알렉산드로스는 동쪽과 서쪽에 걸친 넓디넓은 영역에 제국을 세우게 된 걸까? 우리는 이제 마냥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이런 일이 한 개인의 능력과 야망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과연 이 모든 일이 알렉산드로스라는 영웅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일까?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에세이, 그리스인 이야기 3에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가 스스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다. 이후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연구에 몰입하고, 관념에 도전하는 역사 해석과 발군의 필력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는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로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그녀 스스로 마지막 역사 에세이일 것이라고 소개한 그리스인 이야기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3권이다.

     

    그리스인 이야기시리즈는 앞서 나온로마인 이야기시리즈가 그렇듯 그리스의 태동부터 말로까지에 해당하는 기나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서 꽉꽉 눌러 담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스인 이야기 1은 그리스의 시작부터 페르시아 전쟁 전후까지를 담았다면, 그리스인 이야기 2에서는 민주 정치의 황금시대와 우중 정치 시대로 나누어 그리스의 한창때를 이야기한다.

     

    그리스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는지를 그린그리스인 이야기 3은 총 2부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원래 패권의 중심이 되던 아테네가 어떻게 무너지고, 그 권력이 스파르타와 테베로 넘어가게 되는지를 설명하며 마케도니아가 제국으로 도약하기 전 그리스와 주변 지역의 사회·정치·경제·군사·문화를 아우르는 전반적 상황을 설명한다. 2부에서는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게 기반을 다진 필로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를 어떻게 동양과 서양을 융합한 제국으로 만들어나가는지를 상세하게 담는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사후 무너진 마케도니아와 함께 발흥한 헬레니즘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이야기한다.

     

    마케도니아를 동양과 서양을 잇는 대국으로 성장시킨 가장 큰 공은 알렉산드로스에 있기에 이 책 분량 반절 이상이 알렉산드로스에 할당되었다. 그리고 저자 역시 알렉산드로스의 뛰어난 역량과 업적을 중심으로 그의 세계 제국 건설기를 집중 조명한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재밌게 본 부분은 뛰어난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세계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다양한 배경을 설명한 부분이 내게는 더 흥미로웠고 현대인인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유연성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민주정치는 잘 활용하면 많은 이점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정치 시스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아테네에서는 유일무이한 절대선이라는 느낌을 주는 '민주주의'로 변용된 상태였다.

    -그리스인 이야기 3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민주 정치로 흥한 그리스의 도시 국가 아테네가 무너지는 모습이다. 흔히 민주 정치는 으뜸의 정치체제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민주 정치가 그리스 안에서 어떻게 무너졌는지 역사적 사건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 나타난 독재 정치체제가 오히려 마케도니아를 제국으로 키워내는 모습이 나온다. 민주 정치가 당연한 것으로 배워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사뭇 당황스러운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한 정치 체제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 체제도 사람이 고안했기에 완벽할 수 없다. 각 정치체제에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체제만이 아니라 현재 정치체제를 보완하는 또다른 정치체제 역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유력자 사이에는 양쪽 모두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배턴터치가 어려워진다. 이것이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드물다. 46세의 필리포스는 확실히 바라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배턴은 20세 아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스인 이야기 3

     

    그리스인 이야기 3에서는 마케도니아가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이유로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역시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가 필리포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알렉산드로스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필리포스는 강력한 군사 훈련으로 성장한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의 유명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초빙하였다. 문무를 모두 겸비한 인재로 알렉산드로스가 거듭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을 해준 것이다.

    필리포스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단결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군사력을 키우고 나라 전반을 재정비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마케도니아가 다른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패권국가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페르시아 전쟁 때 이후로 단결된 적 없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스파르타는 제외)을 동맹국으로 만들어 좁은 그리스 지역 안에서의 싸움을 막고 더 넓은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개인의 위명에 많은 다른 인물들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알렉산드로스는 분명 당시에 다른 사람이 이룩하지 못한 일을 해낸 위대한 사람이지만 그를 도운 '컴파니언'과 충복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스승이 없었더라도 그가 동서양의 융합을 이뤄낸 세계 제국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인물만이 아니라 복잡한 당시 사회 상황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알렉산드로스를 너무 영웅시하며 세계 제국이 될 수 있었던 다른 요소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인 이야기 3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띄엄띄엄 알고 있기만 했던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 사상을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역사 에세이였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본래 역사 전공자가 아닌데도 그리스의 방대한 역사를 그리며 동시에 그리스 문화와 사상까지 모두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에 크게 관심 없는 현대인이라도 재밌게 읽을 법하게 적절한 비유와 설명을 곁들였다. 이렇게 내용을 알차게 눌러담았기에 '그리스인 이야기' 시리즈는 베개 같은 500여 페이지 분량의 책 세 권으로 완성되었다. 분량에 놀라 뒷걸음질 칠 수 있지만 꽤 재밌어서 생각보다는 빨리 읽게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철저히 유럽중심적인 시각에서 쓰였으며 종종 오리엔탈리즘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게하기 위해 풀어쓰다보니 그리스와 그리스가 아닌 지역을 '문명-야만'의 이분법이나 '그리스-오리엔트'라는 이분법적 사고관을 바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분은 자칫 독자들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부분에서 아쉬웠다. 특히 이 책이 역사에세이를 표방하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전문적인 지식인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가의 관점에 의탁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독자들이 잘 주지하고 읽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민주정치도 만들었지만 우중정치도 만들어냈다. 시민 전원의 투표도 이뤄냈고 부정 투표도 실현했다. 올림픽도 발명했고 보이콧도 발명했다.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그 이면까지 만들어낸 셈이다. '유럽'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건너편을 '아시아'라고 이름 붙인 것을 비롯해, 좋든 나쁘든 우리는 많은 것을 고대 그리스인에게 빚지고 있다. 철학과 과학, 예술만이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인의 역사도 감탄과 어이없음의 되풀이였던 것이다.

    -그리스인 이야기 3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서구화된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고대 그리스에 많은 것을 빚졌다. 그 때의 그 도시국가가 이루던 그리스는 사라졌더라도 그리스의 빛나는 문화와 사상은 유럽인들의 뿌리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 주변에 살아 숨쉬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세계 곳곳에 스며든 그리스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금 긴 여행일 수도 있지만 재치있고 똑부러지는 해설자인 시오노 나나미와 함께 옛 그리스로 산책을 떠나보면 당신도 모르게 그리스인들이 가진 이야기에 매료될 것이다.

  • 그리스인 이야기. 1_00650
    • 평점 5점 만점에 3점
    • j2h****
    • 2018.09.14

    1.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1.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기원전 776년에 올림피아 땅에서 시작된 고대올림픽은 기원후 393년 폐지 명령을 받을 때까지 무려 1,169년 동안 계속 되었다. 4년에 한 번 열렸으니 모두 292회나 개최한 셈이다.

    393년에 고대올림픽 폐지를 명령한 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였다. 세례 받은 그리스드교 신자가 된 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그리스도교 외에는 국교가 없음을 선포하고 다른 모든 종교를 사교라고 규정했다.



    2. 나라 만들기의 여러 모습


    도시국가 스파르타를 구성하는 세 계층인 스파르타 시민 : 페리오이코이 : 헬롯'의 비율은 1 : 7 : 16 정도였다고 한다.

    아테네 시내의 인구가 10만에 이르렀을 때 아테네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스파르타의 시내 인구는 3만 정도에 머물렀다. 도시 내부에 스파르타 시민과 그 가족 이외의 사람이 사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스파르타는 강력한 군사 국가로 유명한데 그것은 외적보다는 내부의 적을 방어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파르타인 리쿠르고스는 자기가 이룬 개혁을 '종교'로 만들었지만 아테네인 솔론이 이룬 개혁은 어디까지나 법률에 기초를 둔 '정치'였다.


    22세에 솔론의 눈에 띄어 30세에 '살라미스의 영웅'이 되었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이제 54세가 되었다. 근현대사 연구자들은 페이시스트라토스를 '티라노스(독재자)'라고 부른다. 그래서 앞으로 풀어갈 그의 치세를 '독재자가 아테네를 지배한 시대'라고 부른다.


    '테트라드라크마tetradracma(4드라크마 은화)'는 그 후 200년 이상 아테네를 대표하는 통화가 되었다.


    솔론의 개혁은 아테네에 질서를 부여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지향한 것은 아테네를 안정시키고 이를 통해 경제력을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당시 제조업에서 중요한 분야를 차지한 아테네의 항아리 산업이 크게 비약했다. 코린토스 제품을 모방하지 않았다. 싸구려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가격경쟁에서 승리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코린토스 제품에 도전하려는 듯이 아테네에서 생산된 항아리의 주종은 붉은 바탕에 검은 색이나 검은 바탕에 붉은 색으로 묘사한 항아리였다.

    차이가 나는 것은 색깔만이 아니었다. 정지한 사람을 묘사한 코린토스 제품과 달리 아테네 제품의 무늬에는 역동적인 인간 묘사가 많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장면에서부터 올림피아의 올림까지 묘사했다. 나체로 무리 지어 달리는 남성 주자들, 네 마리 말이 질주하는 전차경주 등을 그려 넣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양피지에 필사하는 방법으로 '정본화'한 사람도 페이시스트라토스였다.


    "분명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전제 통치자였다. 그러나 쾌적한 전제자였다."


    클레이스테네스는 35년 전에 불탄 채로 방치되어 있던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자비로 재건했다. 이 신전은 리쿠르고스의 사례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스파르타인들이 신탁을 얻기 위해 찾는 곳이었다. 훌륭하게 재건된 신전을 보고 스파르타인들은 감격했고 클레이스테네스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었다.


    기원전 510년, 아테네를 지배했던 전제정치는 막을 내렸다. '페이시스트라토스 체제'는 개막 36년 후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은 지 17년 만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다른 나라의 손을 빌렸다고는 하지만 이겨서 살아남은 것은 클레이스테네스였다.


    페리클레스도 클레이스테네스가 속한 아테네의 명문 중 명문 알크마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늘날까지 명성이 자자한 '아테네 민주정치'는 모두 최고의 엘리트들이 만들었다. 왜냐하면 고대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는 '국정 방향을 시민(데모스demos)의 손에 맡긴다'가 아니라 '국정 방향은 엘리트들이 생각해서 제안하고 시민에게 그 찬반을 맡긴다'이기 때문이다.


    융성기의 아테네 지도자들이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명문가 출신으로 채워진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솔론, 페이시트라토스, 클레이스테네스, 페리클레스 등 아테네의 개혁이라는 릴레이 팀 주자들 이름을 거론하면 그 폐해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세습의 연속이었다.


    페이시스트라토스 시대 말기에 스파르타가 현실화한 '펠로폰네소스동맹'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동맹은 페이시스트라토스 통치 시대에 급속도로 번영을 구가한 아테네에 위기감을 느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도시국가들과 함께 결성한 동맹으로 이 동맹을 전후로 해서 스파르타는 패권 노선을 180도로 전환했다.


    제비뽑기라고 하면 아테네 사람들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서는 고대 아테네의 생각에 접근할 수 없다. 그들에게 추첨은 결과를 신에게 맡긴다는 의미였다. 클레이스테네스가 추첨을 도입한 깊은 뜻은 아테네 시민이 일생에 한 번은 공직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도편추방

    당시의 종이는 파피루스를 재료로 만든 것으로, 이집트에서 수입해야 해서 가격이 비쌌다. 한편 항아리나 접시 제조가 성황을 이루었던 아테네에 테라코타(도기) 파편은 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았다. 따라서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투표는 지참한 작은 칼로 그 도기 파편에 문자를 새기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도편(오스트라콘ostracon)은 투표용지로 사용되었고 추방해야 할 사람을 뽑을 때도 활용되었다. 도편추방은 투표와 다른 엄중한 규제가 있었다.

    첫째, 이 투표의 목적은 도시국가 아테네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국외 추방에 처하는 것이다.

    둘째, 이 목적에 따른 투표는 1년에 1회로 한다.

    셋째, 투표에 참가한 사람이 6,000명 이상이 되어야 하고 6,000명이 넘지 않으념 정족수 미달로 성립되지 않는다.

    넷째, 전체 투표자의 과반수가 이름을 적은 사람은 10년 동안 국외추방에 처한다.


    도편추방제에 따라 추방된다는 것 자체는 명예훼손이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당당하게 귀국할 수 있었고 스트라테고스로 재선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뿐 아니라 시민집회에서 결의하면 10년이 안 되어도 귀국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25년 동안 빈번하게 일어났다.


    오늘날 그리스·로마 문명을 모태로 한 서구에서조차 아테네 민주정치를 만들어낸 주인공이 솔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는 참된 의미에서 민주정치의 창시자는 클레이스테네스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민주정치 자체라면 이미 에게 해에 있는 키오스 섬이나 아테네에 인접한 메가라에서도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와 두 도시국가의 차이는 민주정치를 확립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있다.

    그 격차는 왜 생겼을까. 아테네만이 중산계급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솔론이 첫걸음을 떼고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경제력을 더했으며 그 뒤를 계승한 클레이스테네스가 개혁을 단행해서, 아테네는 스스로 생산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건전한 중산계급'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잘게 분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편성한 것이 사회 격차를 줄였다. 중산계급의 존립 없이는 민주정치가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적 상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정세에서도 실제로 증명되었다.


    작가에 대한 평가는 '작품'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사생활은 관계없다.



    3. 침략자 페르시아에 맞서


    페르시아와 그리스 두 나라는 모두 기원전 6세기에 거의 동시에 발흥해 평시와 전시 구별 없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페르시아제국이 다리우스 3세 시절인 기원전 333년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군대에 완패하면서 몰락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마라톤전투'가 기원전 490년 여름에 벌어졌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가 지닌 역사적 의의는 매우 컸다. 페르시아가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증명되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이 사실이 그리스 세계뿐 아니라 중동이나 이집트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진 '마라톤'은 근대올림픽 종목인 '마라톤'으로 이름을 남겼다. (제1차 페르시아 전쟁)


    기원전 486년, 아직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지도 않았는데 심신이 지친 탓인지 '왕 중의 왕' 다리우스가 죽고 말았다. 이렇듯 무패와 부적으로 전진하던 다리우스의 36년에 이르는 치세가 막을 내리게 만든 것은 마라톤에서 당한 패배였다. 다리우스는 자기 뒤를 이어 '왕 중의 왕'이 될 아들 크세르크세스에게 그리스에 대한 설욕전을 유언으로 남겼다.


    넷째 아들로 태어난 레오니다스는 왕위 계승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져 보통의 스파르타 소년과 마찬가지로 7세부터 20세까지 계속되는, 병사 양성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생활을 하며 성장했다.

    레오니다스는 비인간적이라고까지 생각되는 엄격하고 거친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20세가 되었을 때 야산에 버려져 개인의 재능과 힘만으로 일주일을 살아남았고, 마지막에 헬롯이라 불리는 농노를 습격해 머리를 베어 갖고 돌아오는 야만적인 통과의례까지 치렀다. 그런 과정을 모두 경험한 스파르타 왕은 레오니다스가 유일하다.


    기원전 480년 8월에 일어난 역사적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레전투'는 스파르타의 마지막 병사가 전사하면서 끝났다. 스파르타 전사에게 철학이라고 해도 좋을 '이기든지 죽든지'를 그대로 보여준 전투였다. 레오니다스와 그가 이끈 스파르타인 300명은 순수한 스파르타 전사로서 싸우다가 죽었다.


    아테네인과 달리 스파르타인은 역사뿐 아니라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 옥쇄 :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지다. 공명이나 충절을 위해 깨끗하게 죽음


    파우사니아스는 전왕인 클레옴브로토스의 아들이었고 또 한 사람의 전왕인 레오니다스의 조카였다.


    페르시아 총사령관 마르도니우스의 전사(플라타이아이 전투)


    플라타이아이전투는 살라미스 해전과 달리 당시 최강국인 페르시아로서는 변명할 거리가 없는 명백한 참패였다. 살라미스해전에서 패한 것은 주력이던 페니키아 해군이지 육군 대국인 페르시아가 아니라는 변명이 가능했다. 그러나 플라타이아이에서 페르시아는 주력을 투입하고도 패배했다. 그야말로 '완패'를 맛보아야 했다.

    후세 역사가들은 이 플라타이아이전투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승리의 영예는 거의 100퍼센트 스파르타의 파우사니아스와 그의 중무장 보명에게 돌려야 한다."


    첫해인 기원전 480년은 살라미스해전에서 그리스 쪽이 페르시아를 상대로 '결정타'를 날린 해였다. 두 번째 해인 기원전 479년은 플라타이아이전투 승리와 미칼레와 세스토스의 탈환 성공으로 그리스 쪽이 페르시아에 '결정타'를 날린 해였다. 이렇게 해서 에게 해는 다시 그리스인의 바다로 돌아왔다.


    그사이 페르시아 왕 크레스크세스는 안전한 내륙에, 페르시아가 그리스 침공의 전초기지로 생각했던 사르디스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플라타이아이와 미칼레의 패배 소식을 들었다. 크세르크세스는 격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가신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래도 아직 괜찮았다.

    40세가 된 페르시아 왕을 고뇌의 밑바닥으로 빠뜨린 것은 분노가 아니라 더 질 나쁜 감정이었던 듯하다. 오리엔트 귀공자를 습격한 이 인격 파탄은 플라타이아이나 미칼레 전투 결과 때문이 아니라 이미 살라미스해전 직후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까지 그를 조절해왔던 자기 제어가 붕괴되었다. 아들의 애처에게 손을 댔고, 이 사실을 알고 미칠 듯이 화가 난 왕비가 그 여인의 사지를 절단하는 만행이 발생하면서 급기야 왕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었고, 더욱 무분별한 생동을 일삼을 뿐이었다.


    페르시아(동방)는 '양'으로 압도하는 방법으로 공격해 왔다. 그리스(서방)는 '질'로 맞서 싸웠다. 이때 '질'이란 개개인의 소질보다는 모든 시민이 지닌 자질을 활용한 종합적인 질을 의미한다. 즉 한데 모아서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승리했다. 보리 한 줌에 불과했지만 대제국을 상대로 이긴 것이다.

    페르시아전쟁을 통해서 자기들이 지닌 모든 힘의 적절한 활용을 중시하는 정신이 그리스인의 마음에 생겨났다.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 문명이 이후 유럽의 모태가 되는 노정을 거쳐 유럽 정신을 형성하는 중요한 한 요소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승부는 '양'이 아니라 '활용'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4. 페르시아전쟁 이후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에서 승리한 뒤 스파르타의 초대를 받았는데, 다른 나라 사람에게 폐쇄적인 일국 평화주의 노선을 완고하게 지켜온 스파르타인에게서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면 국보급 대환영을 받았다. 스파르타인은 늘 시의심을 가고 아테네인을 바라보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에게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올림픽의 우승자라도 된 것처럼 이 아테네인의 머리에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스파르타의 베테랑 세대는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해 아테네인이지만 장군을오서 재능을 충분히 인정했고, 스파르타 청소년들은 동경 어린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다음 에피소드는 그 후 얼마 뒤에 개최된 고대올림픽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경기가 진행 중인 주경기장 관중석에 테미스토클레스가 들어왔다. 그때까지 선수들에게 집중했던 관객 전원의 시선이,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선수들에게서 떠나 관중석에 막 들어선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집중되었다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최고의 유명인일 뿐 아니라 그리스 최고의 유명인이었다.


    기원전 490년에 마라톤 평원을 무대로 전투를 벌인 것이라 마라톤전투다. 여기에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300명이 옥쇄한 테르모필레전투 그리고 살라미스해전을 포함한 세 전투를 2,500년 뒤 서양인들도 그리스의 페르시아 군대의 침공에 맞서 싸운 3대 전투로 알고 있다.


    마라톤전투는 2만 5,000명의 페르시아 군대에 맞서 1만 명의 그리스 군대가 압승을 거둔 전투였다. 이 승리의 최고 공로자는 사실상 최고사령관으로 아군 전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밀티아데스였다.


    밀티아데스의 명성은 급상승했다. 아테네 시민은 그에게 전투를 맡기면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60세가 되어 쏟아지는 칭찬을 받자 밀티아데스의 마음이 움직였을지 모른다. 다음 해에 시민들의 요청을 받아서 이번에는 해군을 거느리고 파로스 섬 공략에 나섰다. 그런데 파로스 섬 공략전에서는 준비 부족에다 밀티아데스 본인이 중상을 입어 1개월갸량의 공방전 끝에 아테네 군대는 퇴각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아테네 시민들은 밀티아데스에게 격노했고 중상을 입은 최고사령관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고소를 당한 '마라톤의 영웅'은 최악의 경우 사형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때 밀티아데스를 사형에서 구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마라톤에서 사령관 중 하나로 밀티아데스를 도운 테미스토클레스였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애를 썼지만 사형을 벌금형으로 낮추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밀티아데스는 불과 1년 전에 칭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이제는 50탈란톤이라는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고 아들 키몬이 조금씩 갚는다는 조건으로 겨우 사형을 면했다. 하지만 얼마 뒤 부상이 악화되어 끝내 세상을 떠났다.

    당시 35세던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사건에서 배운 바가 있었을 것이다. 민중이란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실망 또한 커지는 생물이라는 점을 말이다. 또한 과도한 기대를 품은 자신들은 반성하지 않고 자신들이 맛본 실망의 정도를 더욱 크게 느끼면서 실망을 초래한 사람을 미워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마라톤에서 승부의 열쇠를 손에 쥔 사람은 밀티아데스였고, 살라미스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플라타이아이에서는 스파르타의 젊은 장군 파우사니아스가 그 열쇠를 손에 쥐었다.


    페르시아는 육군의 나라이며 페르시아가 다시 침공해 오면 육지를 통해 육로로 올 것임을 아테네 시민 모두가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페르시아는 이미 살라미스에서 대패했고 사모스 섬의 해군기지도 붕괴되어 바다에서 공격해 올 일은 없었다. 당시 아테네는 최대 최강의 해군국이었다.

    그러나 육군을 주요 전력으로 삼는 나라가 그리스 내부에도 있었다. 바로 스파르타였다.


    스파르타를 맹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동맹'과 양립하는 형태로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동맹'이 탄생했다.


    기원전 471년 도편추방에 의해 테미스토클레스가 국외로 추방되었다. 살라미스해전 9년 뒤의 일이었다. 플라타이아이전투 뒤 8년, 아테네와 피레우스 일체화 이후 7년, '델로스동맹' 결성 뒤 6년이 지난 때였다.


    그동안 계속해서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뿐 아니라 중세에서 근대까지, 근대에서 현대까지 유럽인들은 파우사니아스가 뛰어난 장군이었지만 증오해야 마땅한 배신자라고 믿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 독일 학자들이 위작설을 주장했는데, 이것이 위작임을 아는 데 어떤 특별한 학식조차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헤로도토스도 어느 정도 의심을 품으면서 기술했다고 하는 데 헤로토도스보다 더 실증적인 역사서를 쓴다고 자부했던 투기디데스가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한마디로 투기디데스는 파우사니아스를 좋아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파우사니아스에 관해서는 저잣거리의 소문 정도 중상이라고 보아야 할 일화까지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여서 소개했다. 투기디데스의 <역사>에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의 전투가 아니라 그 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가 기록되어 있다. 아테네 사람 투기디데스가 보기에 파우사니아스는 한 시대 이전의 주역이었지만 당시 적국이 된 스파르타 사람이었던 것이다. 파우사니아스에 의한 플라타이아이 승리도 그 중요성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아테네인 투기디데스가 보기에는 적국 스파르타의 인간이 이룩한 위업일 뿐이었다.


    투기디데스 덕분에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의 에포로스들뿐 아니라 그 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배신자'로 단죄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이제까지 등장한 사람들의 흉상은 소개할 수 있지만 파우사니아스의 흉상만은 소개할 수 없다.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의 흉상이 현대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고대 로마인이 수없이 많은 모사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을 존경했던 로마인은 공공도서관, 자택 서재 등에 그리스 위인들의 흉상을 두는 것을 좋아했다.

    고대 그리스의 흉상이 현대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고대 로마인이 수없이 많은 모사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을 존경했던 로마인은 공공도서관, 자택 서재 등에 그리스 위인들의 흉상을 두는 것을 좋아했다.

    파우사니아스의 흉상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전투에 능숙했던 로마인조차 파우사니아스를 '배신자'라고 보았다는 증거다. 덕분에 페르시아제국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두들겼던 '플라타이아이전투'에 대한 후세의 평가까지 '살리미스해전'과 비교되지 못했다. 그 결과 스파르타가 주역으로 치른 전투로는 레오니다스와 병사 300명의 테르모필레 옥쇄만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말았다. 옥쇄해서 패배하기보다는 옥쇄하지 않고 승리하는 쪽이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페르시아왕은 바로 허락했다. 그것도 그냥 오케이가 아니라 테미스토클레스를 마그네시아라는 도시와 두 지방의 장관으로 임명했을 정도다. 이 세 곡에서 들어오는 수입을 생활비로 쓰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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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j*******
    • 2018-10-0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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