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지 않은 마침표. 2

콕토는 일생을 두고 연인 레이몽 라디게를 사랑했다. 그가 그녀를 만난 것은 20세 때이다. 그때 라디게는 불과 15세의 청순한 소녀였다. 콕토의 일생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오도록 한 라디게와의 이 만남은 피카소와의 운명적 만남보다 더 의미 깊은 것이었다. 라디게는 19세 때에 이미 프랑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완벽한 심리소설 <육체의 악마>를 남기고 20세에 요절한 조숙한 천재였다.
콕토는 라디게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훗날 그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라디게의 진가를 일찍 발견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의 재능과 문학을 높이 평가했다.
두 사람은 동거생활에 들어갔지만 그들의 사랑은 라디게가 1923년 12월 2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함으로써 꽃을 피우지 못했다. 슬픔에 잠긴 콕토는 비통한 마음으로 죽은 라디게를 그리며 <세상사>라는 제목의 시를 썼고, 그것은 그대로 그녀의 묘비명이 되었다.

당신 이름을 나무에 새겨 놓으시게
하늘까지 우뚝 치솟을 나무줄기에다 새겨 놓으시게
나무는 대리석보다 한결 나을 것이네
새겨놓은 당신 이름도 자라날 것이네.

콕토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사회 혼란을 다만 사회적, 정치적 제도의 불완전성으로 보지 않고 인간 자체의 결함과 비극으로 파악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 나치 진영의 입장에 섰다가 점령군 당국으로부터 집필과 상영을 금지 당하기도 했다.
1955년 66세가 되었을 때 콕토는 아카데미프랑세즈의 회원으로 변신했다. 때로는 들풀과 같이, 때로는 야생마와 같이 살아온 그가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이 된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그러자 그는 ‘아카데미즘이 아카데미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라는 역설적인 말로 이를 받아넘겼다.
일찍이 사랑하는 사람 라디게를 잃었지만 의기소침해 하지 않고, 매우 활동적으로 그리고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콕토는 만년에는 그림을 그리며 소일하다가 1963년 10월 심장병이 원인이 되어 7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죽기 직전 한 방문자가 그에게 ‘만약 선생님 댁에 화재가 나면 어떤 물건부터 챙겨 나오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콕토는 ‘글쎄요, 나는 아마 불을 가지고 나올 겁니다.’라고 대답할 만큼 그는 만년에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는 죽어서 그토록 사랑한 연인 라디게의 곁에 합장됨으로써 ‘같은 묘비명’ 아래에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