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_시집 총서_08]_동천의 하늘

시집 『동천의 하늘』은 그동안 발표해온 나의 창작시집 여섯 권에서 내 시의 창작세계를 들어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들을 몇 편씩 뽑아 엮은 대표시선집이다. 그 중에 제1부 ‘나의 고고학’은 나와 세계에 대한 몇 개의 단상들이고, 제2부‘바닷가에서’는 시집 『수인과 바다』에서, 제3부 ‘늘 푸른 강물이듯이’는 『지상의 연가』에서, 제4부 ‘날마다 산에 올라’는 『나비야 청산가자』에서, 제5부 ‘정든 땅 언덕위에’는 고향과 지리적 인연의 작품들 중에서, 제6부 ‘옥합을 깨뜨리겠습니다’는 두 권의 신앙시집에서 뽑은 것이다.
1974년 「시문학」지에 문덕수 김종문 시인의 추천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시를 썼으니 공식적인 시인으로 시를 쓴 세월만도 40년이 넘는다. 나의 창작 시집은 첫 번째 시집 『수인과 바다』, 두 번째 시집 『지상의 연가-늘 푸른 강물이듯이』, 세 번째 시집 『나비야 청산가자』, 네 번째 시집 『정든 땅 언덕위에』, 다섯 번째 시집 『십자가 십자가』, 여섯 번째 시집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까지 여섯 권이 된다. 그리고 시선집 네 권을 묶어냈으니 책으로는 모두 열권이 되는 셈이다. 어떤 시인은 평생에 수 십 권의 시집을 냈다는데 창작시집 여섯 권이란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의 존재의미는 시집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만한 시가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소월이나 윤동주는 한권의 시집분량도 안 되는 몇 십 편을 남겼는데도 모두가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도대체 시란 무엇이며 왜 쓰는 것인가.
오늘날 같은 물신시대에 왜 시를 쓰는가.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시라도 써야 사람답게 사는 것 같고, 뭔가 가슴에 뭉쳤던 매듭이 풀리는 것 같고 남들이 몰랐던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기에 시를 쓰는 것이다. 여기서 매듭이 풀린다는 것은 위안을 넘어 영혼이 치유되는 것이고, 몰랐던 세상을 발견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조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은 나와 사물과의 은밀한 관계이기에 남들이 알아주고 말고는 이차적인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각박한 시대에 시를 많이 쓰건 적게 쓰건 남들이 알아주건 말건 내가 시를 쓰고 시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행운이고 축복된 삶이 아닐 수 없다.
시는 철저히 자신의 고백이고 자신의 꿈이고 자신의 자유와 구원을 향한 몸부림이다. 그리하여 조금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고 생각되어질 때 감히 세상에 대한 사랑을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는 내면 깊이에서 울어 나오는 가장 진지한 언어가 되어야하고 기도처럼 간절해야 하고 예언처럼 엄숙해야 한다. 거기에다 삶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감추어진 존재의 발견과 만남에 대한 기쁨이 있고 환희가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기에 변명 같지만 나는 시를 남발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만 있으면 더 고민하고 살펴보면서 정말 내 목소리인지,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먼저 내 자신이 울고 있는지, 떨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계속 붙들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혼자 중얼거리며 즐기다가, 그렇게 오랫동안 시와 동거하는 것이 시이고, 시 쓰기라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생산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