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크고 눈빛은 순수했다.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장교로 복무하고 대기업에 다니다가 벤처기업 사장이 되었다. 대화를 하던 중에 어린왕자 얘기가 나왔고 그는 어린왕자를 모른다고 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모른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이없고 화까지 나려고 한 건 오버지만, 갑자기 그와 놀기 싫어졌다. 어린왕자를 모르는 사람과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담? 별에 대해서도, 장미에 대해서도, 사막여우에 대해서도, 바오바브 나무에 대해서도, 보아뱀에 대해서도 나눌 말이 없잖아. 날씨니 정치니 증시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다가 조개처럼 입을 다문다.
요즘 도시의 불빛과 공해 때문에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고, 밤하늘을 쳐다볼 시간도 없다. 그 많은 별들 중 어딘가 작은 별 하나에 어린왕자가 살고 있다고 믿고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과, 오로지 먹고 자고 일하고 돈 버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잣대로 나는 어린왕자를 적용한다. “어린왕자를 읽었나요?”
『어린 왕자』는 많은 세월이 흘러 저작권이 소멸되었다. 사회의 공공 재산으로 예술 작품이 환원된 것이다. 이렇게까지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킨 작품을 마침내 누구라도 출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번역이 자유로워진 것이어서 어떤 출판사에서도 번역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독자의 입장에는 판본이 너무 많아 어떤 출판사의 어느 번역본을 골라 읽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자신이 읽고 싶은 잘 된 번역을 어떻게 골라야 할까?
이 번역본은 1943년 뉴욕의 레이날 앤 히치콕(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간행된 프랑스어 초판 1쇄를 원본으로 하였다. 그림은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것을 실었다. 많이 본 따뜻한 일러스트들이다. 번역은 요즘 세대 독자에 맞게 쉽고 간결한 톤을 유지했다. 쉬운 말을 골라 읽기 쉬운 글이 되도록 유의했다. 때에 따라 의미보다는 리듬과 음악성을 고려한 부분도 있다. 새로운 어린왕자를 출간하면서 기존 번역의 오류를 찾아 바로잡고, 의미 전달이 잘 되도록 문장을 다듬는 데 유의하였다.
소설 어린왕자는 신비한 책이다. 읽었는데 눈에 띌 때마다 또 읽고 싶다. 읽고 또 읽어도 물리지 않는다. 밥 같다. 읽고 나면 가슴 한 구석이 알싸해진다. 아름답게 잘 살아보자는 의욕도 생긴다. 독자 입장에서 그러할진대 출판사 입장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많이 출간된 어린왕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어린왕자를 줄기차게 만들어낸다.
네이버 검색창에 어린왕자를 치면 목록이 1,000여 권 뜬다. 어린왕자는 그렇고 그런 장미가 수천 송이나 피어있는 장미꽃밭을 보고 울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숫자에 질리거나 기죽지 않고 여기 또 한 권의 어린 왕자를 보탠다. 모래사장에 모래 한 줌 더하는 격인가? 아니, 밤하늘에 별 하나가 더 생기는 일이라고 믿는다. 작지만 유달리 반짝이는 별, 자꾸만 신경 쓰이는 별, 진짜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일지도 모르는…….
수많은 장미 중 하나를 소중히 돌보면 나와 관계 맺은 내 장미가 된다. 그런 마음으로 스마트 폰으로 읽기 알맞은 2017년판 어린왕자를 펴낸다. 이 책을 발견하고 다운로드 받아 인터넷 서재에 보관했다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기적이다. 1,000여 개의 어린왕자 중에 당신의 어린왕자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