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궁금해?

출판사를 등록하고 첫 종이책을 냈을 때가 생각난다. 종이나 후가공에 대해 문외한 중의 문외한이었던 나는 디자이너를 잘 만나서 다행이다 싶었다. 디자인도 해주고 종이 선정과 후가공에다 인쇄소까지 일일이 견적 내 가며 마치 본인이 책을 낸다 싶을 정도로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껏 남의 도움을 의지하지 않고 어쭙잖은 지식으로나마 한두 권 내다 보니 눈이 열리고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천편일률적인 ‘모조지’와 ‘스노우지’의 우물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달까.

종이…, 이름도 모르고 무게도 몰라…. 아는 것이 고작해야 손가락 안에 드니 다른 책을 모방하고 싶어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이때 마침(화장실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후원자와 협력하여 종이 샘플북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기특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인쇄업체에는 미안한 일이지만(너무 종류가 많아 작업이 번거로울 게 뻔했다) 내가 궁금하기도 하고 다른 1인 출판인이나 편집자도 책 제작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나만 잘 되자고 하는 사업은 아니리라.

성진페이퍼 대표님과 통화 후 이튿날로 약속을 잡고 무턱대고 사무실을 찾아갔다. 종이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 줄은 정말 몰랐다. 대표님은 5대 제지사를 비롯하여 프로젝트를 구성할 때 도움이 되는 조언을 몇 가지 해주셨다. 종이를 고르는 것도 번거롭고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 프로젝트라 칭찬해 주셔서 힘이 났다. 지금은 제지사가 자체적으로 샘플북을 만들어 배포하지만 과거에는 샘플북을 상업적으로 판매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내지와 표지는 국내에서 빈도를 고려하여 5대 제지사의 종이를 거의 모두 담으려 노력했고 고급지는 ‘두성종이’와 ‘삼원특수지’ 중에서 표지와 내지를 같이 쓸 수 있는 종이를 선별했는데 표지 두께로 담으려니 두께가 마음에 걸려 평량이 낮은 것으로 추려냈다. 마음에 드는 종이를 표지로 쓰고 싶다면 매뉴얼을 확인해서 주문하면 될 것 같다.

초면에도 정보를 공유해 주신 성진페이퍼 임주환 대표님과, 샘플북 제작에 밑거름이 되어주신 텀블벅 후원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모쪼록 많은 분들을 이롭게 하는 샘플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