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

실크로드 나그네 의 20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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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나를 고립시킨다. 주위가 익숙할 만하면 떠나야 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때로는 30시간이 넘게 기차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때 기차 안에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있었지만，나는 완전히 고립된 존재였다. ‘소외’，스스로 고립을 원해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은 사치이다. 그러나 고립을 강요받은 사람은 가슴 저미는 슬픔을 되씹게 된다. 나는 강요된 고립 속에서 아시아 음악을 연구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국악계는 아시아 음악으로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쓴 이 글에는 내 가슴에 새겨진 퍼런 멍 자국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이 글은 그 만큼 고통을 부여안고 쓴 글이다.
국내에서의 여행도 고달픈 일이거늘，하물며 낯설고 물선 외국에서의 여행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더구나 잘 알려진 관광 명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형체도 없는 음악을 찾아다니는 일은 웬만한 인내심 없이는 계속하기어렵다. 하지만 여행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속에서 찾아낸 음악은 말할수 없이 소중하기 마련이다.
그 동안 동양 음악에 대한 연구는 동양 학자들보다 서양 학자들의 것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서양 사람의 입장과 안목으로 한 것일 뿐이었다. 따라서 우리 나라와의 관계를 살피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서양 학자들의 글에 기대지 않으려고 많이 애를 썼다.

이런 목마름 때문에 나는 직접 실크로드 지역의 음악 현장을 찾아다녔다. 현장에서 듣는 음악은 아주 신선하다. 예컨대 통조림 음식은 아무리 조리법이 훌륭해도 결국 깡통 음식 일 수밖에 없다. 그렇듯이 레코드 음악 역시 녹음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통조림 음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 만나는 음악은 마치 새벽 어시장에서 방금 쏟아 놓은 생선처럼 싱싱하다. 이런 매력 때문에 나는 마치 아이들처럼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때가 되면 미친 듯이 오만 데를 쏘다닌 것이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경치가 아무리 빼어나다 해도 이곳은 내가 떠나야 할 곳이고, 음악도 마찬가지이다”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파키스탄의 라흐르에서는 정말 눈물나게 아름다운 크발리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그 음악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외국 음악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된장찌개 냄새가 구린내가 나서 싫겠지만, 나는 역시 된장찌개를 먹어야 속이 편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들어야 속이 시원해진다. 인도의 차우라시아 Pandit Chaurasia가 연주하는 〈바게쉬리 라가 Bagheshiree raga>가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도，나는 김성진의 〈청성곡〉을 들어야 귀가 편하다.

외국 음악을 현장에서 연구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음악이 참으로 훌륭한 음악이라는 점이다. 평소에 우리 음악만 알고 있었을 때는 이런 사실을 그냥 관념적으로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 나라의 음악을 살펴보면서, 그런 사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환히 보인 것이다.
또한 이런 비교 연구는 우리 나라 음악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더욱 뚜렷하게 밝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 나라 음악사를 외국 음악과 비교하는 연구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 음악의 특징을 밝히는 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이다.